비와 함께 떠난 만인의 연인으로 불린 루돌프 발렌티노는 1926년 8월 30일 불과 31살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그의 수많은 여성팬들은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며 오열하였는데요. 100년이 넘는 할리우드 역사상 그처럼 강한 신드롬을 일으켰던 스타는 없었습니다.
루돌프 발렌티노의 성장 배경
1895년 5월 6일 이탈리아 남부 도시에서 태어난 루돌프 발렌티노는 지나치게 잘생기게 태어난 악동 장난꾸러기였습니다. 수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루돌프가 존경하면서도 무서운 분이었고 그래서 프랑스 태생 어머니와 친근하고 각별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별탈없을 것 같던 가정이었지만 1906년 그의 아버지가 갑자기 말라리아로 사망하면서 시련이 시작됩니다. 그는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고 반항심이 넘친 채 기숙학교를 다녔고 농업학교에 다니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18세에 학교를 뛰쳐나와 건달처럼 살게 됩니다. 그는 탱고를 배우고 상류 사회에 어울리며 집 나올 때 가져 나온 유산 4000달러를 순식간에 탕진하였습니다.
1913년 뉴욕에서 그는 노숙자 생활도 해보고 웨이터 등으로 일을하였고 남창 생활도 하게 됩니다. 어리석고 부주의했던 청년 루돌프에게는 확실히 개선과 변화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방탕한 삶
피츠 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실제 인물이 그가 아닐까 싶었던 그는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고 옛날 말로 강남 제비 같은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는 우아한 마스크와 현란한 춤솜씨로 돈을 받고 상류층 여성들과 어울렸습니다. 물론 개인 레슨도 해주었고 거기에는 잠자리도 포함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지위는 라운지 댄서에서 무용수로 승격하는 듯했으나 여전히 나이트클럽에서 사모님을 유혹하면서 제비 놀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칠레의 사교계 명사 블랑카와 외도를 하였고 이사실을 안 블랑카 남편은 그를 간통죄로 신고하여 루돌프는 체포됩니다. 부부의 이혼 소송 도중 블랑카는 남편 잭을 살해하였고 루돌프는 혐의 없음으로 풀려납니다.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었기에 그는 일종의 도피차원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갔습니다. 뉴욕에서 블랑카가 그를 사교계 명사로 만들어주었듯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노먼 케리가 그를 할리우드로 이끌어주었습니다.
톱스타가 되기까지
1917년 단역으로 시작한 그는 1921년 파격적으로 주연배우가 되면서 톱스타가 됩니다. 1919년에 그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깊은 슬픔을 결혼으로 대체하려고 했는지 여배우 진 애커와 급하게 결혼하였습니다. 사실 진 애커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라벤더 결혼을 한 것인데요 진 애커의 예상과는 다르게 루돌프는 함께 잘 여자가 필요했고 둘의 관계는 6시간 만에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 둘의 이혼 성립은 3년을 끌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 루돌프는 영화 춘희의 미술감독이던 나타샤 람보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나타샤 람보는 배우 나지모바와 동성애 관계였는데 루돌프와 멕시코에서 결혼하였습니다.
하지만 중혼을 허락하지 않은 이탈리아인이었기에 그는 감옥에 갔고 1만 달러의 벌금을 물고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진 애커와 이혼 후 람보바와 정식으로 결혼했지만 람보바가 아이 낳기를 거부하여 둘은 3년 만에 이혼합니다.
람보바를 깊이 사랑했던 그는 상처가 깊었던지 자살을 시도할 정도였습니다. 크게 교통사고도 내더니 숱한 여배우들과 스캔들을 내면서 방황의 삶을 살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결혼한 두 명의 여성이 레즈비언이었고 그는 심각한 애정결핍을 호소하면서 그의 영혼은 더욱 공허해집니다.
황망한 죽음
그의 사생활과는 별개로 1921년에 찍은 영화 족장은 단순한 흥행을 넘어 문화적 신드롬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아랍계 부족장으로 등장한 그가 백인 여성을 유혹하는 것에 당시 미국 백인 사회 여성들에겐 강한 성적 판타지로 작용하였고 이후 영화 제목 sheik은 매력적인 남자를 넘어 호색한이라는 의미이자 루돌프발렌티노의 닉네임이 되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1922년에 찍은 혈과 사에서 투우사로 등장한 그의 노출 장면에 관객들은 엄청나게 열광하였습니다. 그리고 1926년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족장의 속편의 제작에 돌입하였고 영화가 개봉된 후 그는 심한 통증으로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통증의 원인은 궤양의 악화였고 대수술을 받고 회복되는 듯했으나 1926년 8월 23일 2차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하였습니다.
뉴욕 거리에는 10만명 이상의 여성들이 운집하였고 그의 장례식은 폭동에 가까워 수백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 그의 연인이던 폴라 네그리는 4000송이의 장미를 보냈고 여기에 팬들의 장미까지 더해 수만 송이의 장미가 그의 무덤을 덮었습니다.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은 팬들은 자살설에 독살설에 상상을 덧 씌웠고 10여명의 팬들은 그를 따라 목숨을 끊었습니다.
단순한 스타를 넘어 여성팬들의 영혼을 훔친 그는 남성적 매력으로 어필한 것이 아닌 양면적 섹슈얼리티로 대중을 사로잡은 최초의 스타였습니다. 여성처럼 액세서리를 즐기고 화장하고 꾸미는 성향 때문에 그에게 레즈비언들이 꼬인 이유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반지의 저주
또한, 그를 따라다니는 수많은 음모설 중에 반지 이야기가 인상적인데요. 그가 한창 인기가 있을 무렵 샌프란시스코의 한 보석상에서 그의 마음에 꼭 드는 반지를 발견하였는데요. 보석상 주인이 반지에는 저주가 걸려있어서 팔지 않는다고 했음에도 웃돈을 주고 산 이후 찍는 영화마다 폭망하고 맹장인 줄 알고 수술했더니 궤양이었고 수술하다 후유증으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 반지는 그의 마지막 연인 폴라 네그리가 가져갔고 이후 그녀는 병에 걸려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년 후 폴라 네그리는 루돌프를 꼭 닮은 성악가 러스 콜롬보를 만나 그에게 반지를 건넸고 반지를 착용한 그는 며칠 후 우연한 총격전에 휘말려 사망하였습니다. 반지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조 카지노가 물려받았지만 그도 열흘 후 트럭에 치여 사망하였습니다. 반지는 조의 형인 델 카지노가 받아 보관하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 밤 도둑이 들어와 반지를 비롯한 귀중품을 훔쳐 나가는 중 경찰의 위협사격에 맞아 즉사하였습니다. 이 무렵 발렌티노 생애를 영화화하는 작업 중 그를 꼭 닮은 스케이트 챔피언 잭 던을 캐스팅해서 그에게 발렌티노의 옷과 반지를 빌려 착용하였는데요.
일주일 후 그는 희귀병에 걸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델은 반지를 로스앤젤레스의 은행 금고에 보관하고 있었고 잭 던이 죽은 지 1년 후 은행에 강도가 침입해 20만 달러의 현금을 강탈하다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는데요. 그가 훔친 금고에는 발렌티노의 반지도 있었다고 합니다. 반지를 보관하고 있는 은행은 이후에도 재앙이 끊이질 않아 도난 및 화재를 당한 후 반지의 행방을 더는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호랑이 눈을 의미하는 호안석 반지를 살 때 각별히 조심하라는 말이 도는데요. 아직까지 저주가 유효한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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