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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창고/캐릭터 스토리

브리지트 바르도 이전에 유럽 원조 캣우먼이던 시몬느 시몬 스토리

by winter-art 2023. 8. 21.

유럽 원조 캣우먼 시몬느 시몬은 1942년 캣 피플이란 컬트 호러 영화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배우입니다. 그녀는 유럽에서 가장 섹시하고 유명한 배우 중 한명이었습니다. 우연히 검색하다 너무 아름다워서 찾아보게 된 배우인데요. 헐리우드에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배우라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진 배우는 아닌가 봅니다. 그녀를 보면 캐서린 제타 존스도 떠오르고 카메론 디아즈 느낌에 드류 베리모어 느낌도 살짝 나네요.

 

 

유럽의 연인 시몬느 시몬 성장배경

 

 

 

체구는 작았지만 성질은 불같기로 유명했던 시몬느 시몬은 프랑스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1910년 4월 23일 프랑스의 작은 마을 베듄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기술자에서 2차 세계대전 중 전투기 조종사였다 강제 수용소에 갇혀 사망하였고요. 그녀는 마르세이유에서 살다 엄마와 의붓 아버지를 따라 마다가스타르에서 살게 됩니다. 시몬은 어릴 때부터 책을 익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녀는 1930년경 패션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파리로 돌아왔지만 157센티미터의 키임에도 모델일에 도전하였고 1931년 카페에서 식사중에 유명 영화 감독의 눈에 들어 무명의 가수란 영화의 조연을 시작으로 배우가 됩니다. 그리고 1934년 그녀의  네 번째 영화 호수의 여인으로 스타덤에 오릅니다. 

 

호수의 여인으로 스타덤

 

유럽의 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그녀는 이후 헐리우드로 입성하여 폭스사와 계약하고 여러편의 영화를 찍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습니다. 영어가 능숙하지 못하여 소통이 부족한 것도 컷지만 영어 공부에 노력도 별로 하지 않고 성깔만 부린 모양입니다. 게다가 병에 걸리는 등 불운이 겹쳤는데요. 사실 엄밀히 따지면 병을 핑계로 촬영장에 나가지 않았고 그러한 일련의 문제로 진짜로 병이 나기도 했고요. 그래서 마를렌 디트리히와 촬영 중 대립하면서 마를렌이 그녀를 두고 인성 문제를 언급하며 혀를 끌끌찬 적이 있다죠. 뭐랄까 시몬은 얼굴은 특출나게 아름다웠지만 전반적인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듯 보입니다. 

 

 

 

그렇게 시몬은 헐리우드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없자 파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헐리우드는 여전히 시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어떻게든 그녀를 영화에 출연시켰고 그럴 때마다 사건이 생겨 중도에 교체되거나 다른 여배우들과의 불협화음으로 피곤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불같은 성깔의 시몬

 

그렇게 시몬은 불미스러운 일을 등에 엎고 패잔명이 되어 다시 파리로 돌아옵니다. 유럽에서는 몇 편의 영화를 찍었고 그러다가 헐리우드의 러브콜로 다시 돌아와 1942년 공포 영화 캣피플을 찍은 후 미국에서도 나름 유명한 스타가 되었습니다. 영화 캣피플은 여주인공이 화가나면 무서운 검은 표범으로 변한다는 내용인데 한국판 구미호 같은 거였나 봅니다. 영화는 속편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흥행했지만 헐리우드 비평가들의 찬사는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캣피플을 찍을 당시에 FBI로부터 감시를 받은 적이 있는데요. 다름아닌 그녀의  개인 비서 마샬이 거액의 돈을 횡령하여 시몬이 수사 의뢰를 하자 마샬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시몬의 깜짝놀랄 사생활을 폭로했기 때문입니다.  

 

FBI의 감시를 받은 이유

 

먼저 당대 최고 인기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조지 거쉰과의 스캔들도 상당히 논란이 되었는데요. 그는 평소에도 여자 관계가 복잡하기로 유명했지만 그의 나이 서른아홉살에 악성 뇌종양으로 갑자기 사망한 1937년에 발표한 곡 love walk in이 시몬을 위해 발표한 곡이라고 마샬이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 그가 게이였다는 설부터, 시몬은 그와 여행 중 손도 안 잡았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더군다나 이미 1930년에 썼던 곡이고 가사는 동생 아이라 거쉰이 썼기에 연애를 해도 아이라 거쉰과 했을 확률이 더 높지 않았으려나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시몬이 노래를 부르면 거쉰이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단순 프랜드십이었다고 하는 말이 돌기도 했고요. 어쨌거나 조지 거쉰과 시몬과의 관계가 밀접한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지 거쉰과의 연애 문제로 에프비아이의 감시를 받지는 않았을 테고요. 

 

 

 

 

마샬의 폭로 중에는 시몬과 교제한 남자 듀스코 포포프도 있었는데요. 그는 다름아닌 당대 최고의 이중 간첩으로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반인들이 그가 스파이란 것을 알 턱이 없었겠지만 에프비아이는 예의주시하며 그녀를 지켜봤겠죠. 듀스코 포포프는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제임스 본드의 모티브가 된 인물입니다. 이쯤이면 시몬보다 포포프란 남자에게 더 관심이 갈 정도인데요.

 

어쨌거나 당시에는 여배우나 디자이너나 간첩으로 활동하거나 그렇게 오해받는 일이 적지 않았기에 시몬도 의심을 살 수 있던 상황이었겠죠. 시몬과 포포프는 헤어졌고 시몬은 마샬에게 떼인 돈을 다 받지 못하였고 더는 사생활을 폭로하지 못하게 입막음 한 것과 승소의 기쁨보다는 사생활에 관한 모욕만 들어야했으니 그녀 입장에서는 끔찍한 기분으로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을 겁니다. 

 

 

평생 혼자 살다 편히 가심

 

 상처만 남은 채 시몬은 고국으로 돌아가 몇 년동안 조연 단역 가리지 않고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열심히 일하였고요. 1972년 푸른 여인이란 영화를 마지막으로  대중의 눈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그녀 또한 나이든 여성의 모습으로 출연하고 싶지 않다고 인터뷰를 거절하였습니다.

 

시몬은 수많은 남성들과 교제를 하면서 자유롭게 살면서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아이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파트에서 94세 노환으로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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