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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ter book/성경 자의적 해석

끝도 없는 구라의 연속 이스라엘 민족의 합리화 여호수아 5장(10절~)

by winter-art 2025. 3. 21.

여호수아 5장 10절에서 1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가나안에서 첫 유월절 후 만나가 멈추고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군대 지휘관을 만나 이 전쟁은 이스라엘 주체가 아닌 하나님의 전쟁을 확인하는 내용이라고 하는데요. 개인적인 해석은 다르니 재미로 읽어 봐주시길.

 

가나안 접수 시작

10 While the people of Israel were encamped at Gilgal, they kept the Passover on the fourteenth day of the month in the evening on the plains of Jericho. 11 And the day after the Passover, on that very day, they ate of the produce of the land, unleavened cakes and parched grain. 12 And the manna ceased the day after they ate of the produce of the land. And there was no longer manna for the people of Israel, but they ate of the fruit of the land of Canaan that year.

 

 

10절부터는 유월절을 지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길갈에 진을 치고 돌을 쌓더니 할례를 하였잖아요? 그다음으로는 유월절을 거행합니다. 이는 가나안 땅 점령식과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만나를 중단하고 가나안에서 난 소산물을 먹기로 합니다. 그런데 만나는 누가 중단한 것일까요?

만나가 그쳤다고 한 것은 하나님이 공급을 중단하고 니들 스스로 먹어라, 하고 명을 내린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 5장 1절~9절 내용 보기

 

전쟁 앞두고 할례 받고 애굽의 수치를 씻은 여호수아 5장(1절~9절)

여호수아 5장 1절에서 9절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자 여리고 사람들은 혼비백산이 되었고 여호수아는 일련의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데요. 4장에서 돌로 장난친 것에 이어 5장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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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는 정말로 하나님의 공급 중단?

가나안 입성하자마자 만나가 중단된 것이 하나님의 결정권처럼 느껴지긴 하는데요. 환경 차이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시내산 광야는 건조하고 황량하면서 사막성 기후입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가나안 땅, 여리고 평야는 습윤하고 강우량이 많습니다. 광야에는 식물이 거의 없고 가나안 땅은 농사가 가능하고 밀과 보리 재배가 가능한 지역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는 외부의 공급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하지만 가나안은 땅에서 먹거리 생산이 가능한 곳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러려고 그렇게 가나안 땅 정복에 목숨을 걸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비옥한 토지를 차지하려고 온갖 합리화를 다 했구나. 아무튼, 광야에서 야인처럼 산 이스라엘 민족은 이제 물 만난 고기가 되어 만나가 없이도 풍족한 먹거리가 생겼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혈통 자체가 아주 잔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사사건건 입만 열면 구라질입니다. 성경을 목사의 설교 구절만 바탕으로 드문드문 읽은 사람들은 절대 이해 못 할 것 같은데요. 그리고 신앙심으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고 맹목적으로 읽기만 하는 사람들은 제발 통찰력을 가지고 읽어 보길 바랍니다. 거리에 이스라엘 국기 들고 돌아다니는 어르신들은 기독교인이라고 하지 마시고요. 심지어 하나님조차 이스라엘 너네는 목이 곧은 백성(출애굽기 32장 9절)이라 할 정도로 혀를 내두르셨을까 싶네요.

 

말 나온 김에 이스라엘 혈통들의 대표적인 구라 사례들을 알아봤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두번이나 와이프를 팔아먹었습니다.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했었죠. 야곱은 이름부터 속이는 자이며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강탈했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눈이 멀었을 때 몸에 털 붙이고 형인척 했고요. 라헬은 낙타 안장 밑에 토템 숨겨 놓고 우상 못 봤다고 구라 쳤고요. 요셉의 형들은 동생이 죽었다고 아버지를 속였고요. 사울은 하나님 말 들었다면서 몰래 전리품을 숨겼습니다. 다윗은 바세바 사건으로  전쟁 조작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맨날 불평불만을 일삼으며 노예 시절이 좋았다는 등 김새는 말을 일삼았습니다. 사사기는 평화 약속하고 뒤통수치고 뒤통수 맞기를 반복했고요. 아무튼 이스라엘 민족은 본디 잔망스럽고 약아빠졌고 구라 잘 치고 고집도 세고 상황에 따라 급변하며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근성이 현재까지 이어져서 뒤에서 온갖 나쁜 짓은 다하면서 선한 척은 오지게 하고 있고요. 기독교를 전 세계에 전파하면서 가스라이팅 제대로 하고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모지리 백성들을 내 백성이라면서 끝까지 데리고 가시는 이유가 뭘까요?

 

 

어쨌거나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으로 입성했는데 만나가 내리지 않는 건 너무 당연한 거죠. 기후 자체가 다른데 말입니다. 가나안은 원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먹을 게 차고 넘치는 땅인데 뭘 도착하자 만나가 내리지 않았다 거리는지....

 

여호수아 할례의 숨은 목적       

 

여호수아의 치밀한 성욕 통제 계획에 무릎을 탁

여호수아 5장에 나오는 여호수아의 할례 명령은 언약 갱신이자 성욕 통제 전략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이미 성적 타락을 경험한 그는 가나안 입성 전 본능을 제어하고자 할례 의식으로 전의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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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군대 지휘관의 정체

13 When Joshua was by Jericho, he lifted up his eyes and looked, and behold, a man was standing before him with his drawn sword in his hand. And Joshua went to him and said to him, "Are you for us, or for our adversaries?" 14 And he said, "No; but I am the commander of the army of the LORD. Now I have come." And Joshua fell on his face to the earth and worshipped and said to him, "What does my lord say to his servant?" 15 And the commander of the Lord's army said to Joshua, "Take off your sandals from your feet, for the place where you are standing is holy." And Joshua did so.

 

또 하나 성경을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게 있는데요. 뭔가 감시 체계에 살거나 군사 시스템 같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하나님의 질서는 군사적 구조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거든요. 창세기 1장부터 등장이 남다르잖아요. 마치 미지의 세계 정탐하러 온 것 같은 분위기. 이런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동산 주변을 체루빔이 에워쌌는데 얘들은 칼 든 보초병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건에서는 룻 앞에 두 천사라며 등장하는데요. 이집트 장자 재앙에선 죽음의 천사를 직접 파견하고.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에 하늘 군대가 하얀 말 타고 전투한다고 하고요. 이번에도 여호수아 앞에 하나님의 군대 지휘관이라며 칼 든 무장 전사가 등장합니다. 

 

 

엄청 전투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데, 정말로 하나님은 외계의 발달한 문명에서 오신 분인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번 여호수아 앞에 나타난 존재는 성경에서는 예수의 현현이라고 보던데요. 개인적으로는 앞서 얘기한대로 뭔가 감시 체계하에 있어 직접 본부에서 내려와 명령 하달 같은 걸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전략가 여호수가가 미리 계획해서 짠 자작극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아닌데 신을 벗고 절은 왜 하라고 하는지. 그렇게 절까지 시키는 걸 보면, 가나안의 허경영 같은 자가 나타나서 주님의 대리자라는 양 쇼를 한 것인데 여호수아가 알면서도 속아준 척한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저는 이렇게 이 부분을 쓰레기처럼 희석하고 있지만, 이 장면은 신학, 문학, 역사적 관점에서 매우 의미있게 다뤄지는 대목이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군대 지휘관이 등장했다는 건 그만큼 상징하는 게 클 테니까요. 이것은 전쟁의 주체가 이스라엘이 아닌 하나님 군대임을 선언하는 대목이고 만군의 여호와 사상이 처음 구체화되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세 앞에 떨기나무가 나타난 것처럼 이 사건과 구조상 완벽하게 병치됩니다. 출애굽기 3장을 참조하면 됩니다. 이런 정황들을 보면 여호수아는 모세 짝퉁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통치 목적이 드러나는 것이겠죠. 모세를 통해서는 지속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강조하고, 그렇게 믿음이 쌓인 모세를 여호수아에게 입혀서 통치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계획한 윗분들도 마치 출애굽기 시즌2 같은 신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 비슷한 장치를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하지만 학자들도 의도적 평행 구조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나만 비뚤어진 건 아닐 걸로.

 

 칼의 의미

성경에는 하나님의 군대 지휘관이 칼을 들고 나와서 여호수아가 신을 벗고 그 앞에서 절했다는 내용만 나오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이 칼은 뭘로 만들어진 걸까요? 여호수아 5장 첫 부분은 부싯돌, 그러니까 돌칼로 할례를 한 것으로 나오는데요. 이 시기가 청동기 말기에서 철기 초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것을 보면, 마치 이제부터 이 땅의 힘의 도구가 바뀐다는 상징으로 등장한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군대 지휘관은 단순한 무장 전사가 아닌 새 시대의 선언자인 셈이죠. 이 땅의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 말입니다. 당시 가나안 원주민은 청동 무기를 사용하였는데, 개인적으로 칼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 뭔가 시사하는 게 크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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