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 창고

중국 문명 스토리

by winter-art 2022. 10. 21.

멀리 떨어진 동아시아에서는 건조지대의 황하 문명과 습윤지대의 양자강 문명이 공존하였습니다. 황하는 물보다 진흙이 훨씬 많은 특수한  강이었습니다.

 

 

양자강 문명 스토리

 

중국의 근간이 되는 양자강 혹은 양쯔강 주변 사람들은 주로 조를 재배했습니다. 씨앗이 작았으니 죽으로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와는 달리 대규모 관개 시설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넓은 지역에 소규모 마을이 산재했습니다. 그러면서 거대한 신적 존재를 섬기는 것이 아닌 조촐하게 부족의 조상 숭배로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게 됩니다.

 

 

 

양쯔강
양자강

 

 

조에서 쌀로 주식의 확대

 

 소규모 혈맹 등으로 소통하다 점차 읍끼리 연합하였는데 은나라와 주나라가 대표적입니다. 한편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하는 양자 강의 중하류지역에서는 쌀문명이 발달했습니다. 비로소 인간이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주식이 생긴 겁니다. 물론 쌀은 많은 물을 필요로 하지만 수확량이 많고 병충해 피해에도 강해서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이상적인 곡물이었습니다. 현재까지 동양인의 주식으로 이용하는 것보면 선조들의 지혜및 선택은 탁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고온다습한 양자강 기후도 한몫했습니다. 그러면서 강 하류에는 밭에 직접 물을 대는 관개법이 도입되었습니다.

 

관개가 아닌 전쟁에 의해 형성된 동아시아 문명

 

오늘날 중국을 망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는 중화사상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중화사상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 오만했던 거죠. 이와같은 중화사상은 은에서 주로 교체되는 시기에 만들어졌으니 3천년 이상된 사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버틴 걸 보면 맞는 사상 같기도 하고요. 자기들끼리 잘났다고 엄청 싸워댔으니 세상 밖의 일은 나몰라하면서 지낸 세월입니다.

 

 

 

십간 십이지의 탄생

 

오늘날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주학의 근간이 되는 글자는 이때부터 만들어졌나 봅니다. 은왕조 때는 열개의 태양, 그러니까 십간에 속하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가 번갈아가며 세상을 비춘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리고 은왕은 태양신의 자손이라고 여겼습니다. 거의 모든 고대 역사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빛은 생명의 근원이니까요. 여하튼 은왕조는 태양이 한바퀴 도는 열흘을 생활 단위로 삼고 순이라 붙였습니다. 달의 초순 중순 하순 이런 게 이런 이유로 만들어진 겁니다. 그렇게 열 개의 태양은 십간으로 불렸고 우리가 띠로 불리는 십이지는 서아시아에서 차용해 시간, 방향 등을 나타내는 간지로 작용하게 됩니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를 의미합니다. 그렇게 달력도 십간과 십이지의 최소공배수인 60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60이 환갑이 되는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환갑은 중국을 비롯한 서아시아의 문명교류가 만들어낸 일종의 콜라보 작품입니다.

 

은왕은 가고 주왕의 시대

 

은 왕은 자신을 신의 일족이라 여겼고 설명하면 더 많은 스토리가 있지만 중략하고 거북의 등으로 점을 쳐서 생긴 갑골문자를 만들어 냅니다. 신이 된 은 왕은 많은 읍을 지배했지만 인간 자격으로 권력을 쥔 주에게 멸망하고 맙니다. 은 왕은 스스로를 신이라 칭했지만 주 왕은 자신이 신에게 선택받은 자라고 천명하면서 지배와 통치를 합리화합니다. 중화사상에 더해 지배와 통치를 하나로 합치는 천명설ㄹ은 20세기까지도 이어집니다. 

 

 

자미원-별자리와-중국-궁궐
자미원

 

뿌리깊은 봉건제

 

중국 설화에는 북극성 옆에 인간 세계를 지배하는 천제가 사는 자미원이란 궁전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자미원은 자색 고구마 할 때 그 자색을 뜻하는 보랏빛 궁전을 의미합니다. 고대 사람들은 색상 뽑기 어려운 보라색을 신비한 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비쌌을 테고요.

아무튼 이 궁전에 사는 천제가 전지전능한 능력을 왕에게 일임했다는 것이고 이런 생각들이 중국 사회 구조를 수직적으로 만들게 됩니다. 중국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이기도 합니다.

 

이런 뿌리깊은 사상은 세월이 가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넓은 중국은 세대가 바뀌어도 민중의 정치 참여는 저지받습니다. 대체 누가 천명을 받았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현대까지도 그런 생각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입니다. 권력만 잡으면 천명이 바뀌었다며 자신을 우상화하기 바쁜 것 같습니다. 이 뿌리깊은 봉건제는 중국의 현대 정치에도 고스란히 악용되고 있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