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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창고/캐릭터 스토리

여배우에서 비행조종사 그리고 소설가로 산 루스 채터턴

by winter-art 2023. 10. 24.

1930년대 미국에서 최고로 잘 나가던 배우 중 한 명으로 비행 조종사이자 소설가로도 유명한 루스 채터턴의 열정적이고 재능 넘치는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루스 채터턴의 어린 시절

 

 

 

루스 채터턴은 1892년 12월 24일에 뉴욕시에서 건축가 아버지 월터와 어머니 릴리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린아이였을 때 가족을 떠났고 할머니와 어머니에 의해 길러졌습니다. 그녀는 학창 시절에 연기에 대한 재능과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엿고 연기가 공부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열여섯 살에 학교를 중퇴하였습니다.

 

 

 

 

배우가 되기까지

 

 

 

 1911년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데뷔를 하였고 1914년 데디 롱 레그에 출연하면서 인기 배우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움과 우아함 그리고 숙련된 연기로 무대 배우로 상당한 성공을 누렸습니다.

 

 

 

1924년 12월 19일에는 맨하탄에서 첫 남편인 영국 배우 랄프 포브스와 결혼하였고 이들은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습니다. 그리고 1928년 영화 아버지의 죄에 첫 캐스팅 되면서 영화배우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같은 해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약 후 작업한 첫 영화 그녀의 작업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정도였습니다. 이후 작업한 영화도 대중적 성공과 좋은 평가를 받으며 두 번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1932년에는 첫 남편과 이혼하고 배우 조지 브렌트와 재혼하였으나 이 관계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해 말 채터턴은 인기도 조사에서 노마 시어러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스타로 뽑혔습니다. 그밖에 여러 작품 등으로 그녀는 최고 배우로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굳혔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영화는 1938년에 개봉한 왕실의 이혼입니다. 이렇듯 1930년대가 그녀의 리즈 시절이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당시 미국에서 몇 안 되는 여성 조종사 중 한 명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은퇴 후 소설가로

 

1930년대 후반 루스 채터턴은 영화 연기에 싫증을 내어 영화 배우로는 은퇴했지만 연극 무대에서는 지속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그녀는 1942년 세 번째 남편인 배리 톰슨과 함께 미국 동부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브로드웨이 무대로 돌아와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940년대 후반부터는 텔레비전 등에서 다양한 배역을 맡았고 프랑스 푸들을 키우며 소설을 쓰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첫 소설인 홈워드 본은 1950년에 출판되었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세 편의 소설을 더 써서 1950년대에 그녀는 성공적인 소설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루스 채터턴은 1961년 11월 21에 뇌출혈을 겪었고 24일 사망하였습니다. 그녀 나이 68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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