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예술 창고/캐릭터 스토리

부베의 연인 60년대 최고 미인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인생 스토리

by winter-art 2023. 10. 22.

튀니지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이탈리아 여배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1960년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아름다웠으며 대중은 물론 평단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고 배우란 직업을 사랑한 진정한 배우였습니다. 또한, 당시 미국에 mm이 있고 프랑스에 bb가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cc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우

 

 

 

 

클라우디아는 이들과 한데 묶어 단순히 섹시하다는 표현에만 국한할 것이 아닌 보다 다른 차원의 압도적으로 아름답고 현숙한 배우였습니다. 개인적으로 60년대를 대표한 배우 중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1938년 4월 15일 튀니지에서 약간 떨어진 항구도시 라 굴레트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튀니지는 프랑스의 식민지이었기에 그녀의 모국어는 프랑스어였으며 18세가 될 때까지 이탈리아어는 전혀 할 수가 없었습니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성장 배경

 

 

튀니지에서 그녀는 보수적인 사회와 가정아래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릴 때 무척 말괄량이었고 괄괄한 목소리에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간 섬머슴이 따로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녀의 꿈은 아프리카 대륙으로 가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혹은 탐험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14살이었을 때 프랑스의 영화감독 르네 보티에가 그녀가 다니는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등장할 어린 아랍 소녀의 역할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영화에서 클라우디아는 단 몇 초간 나올 뿐이었는데 사람들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그녀의 모습을 본 관객들과 심사위원들은 무명의 그 소녀에게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배우 데뷔 입성기

 

 

 

클라우디아가 미인 대회에 나가지 않았는데도 수상한 유명한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1957년 그녀 나이 16살 때 지역 미인대회에서 두 자매는 무대 근처에서 복권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심사위원 중 한 명이 클라우디아를 보고 그녀가 대회 우승자라고 발표했고 그녀는 엉겁결에 무대 위로 올라가 어깨에 띠를 두르고 수상을 하게 됩니다. 미인대회 수상에 대한 보상은 베니스 영화제를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세상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그녀는 한껏 들떠있었지만 정작 그곳에서 감독들과 제작자들의 영화 출연 제의는 모두 거절했습니다. 이제 겨우 17살이던 그녀는 3개월 동안 충분히 배우 놀이를 해 본 후 이것이 그녀에게 적성이 맞지 않는데다 언어 문제까지 겹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행지에서 그녀를 뒤따라온 10살 연상의 프랑스 남자에게 데이트 강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생계에 직면한 배우 생활

 

 

부모에게 말도 못하고 겁이 난 그녀는 생계에 직면하였고 다급한 마음에 먹고 살기 위해 배우가 되기로 합니다. 때마침 영화 제작자 프랑코 크리스탈디가 그녀에게 비교적 긴 기간인 7년 계약을 맺자고 제안했습니다. 계약 조건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 것과 살찌는 것 그리고 결혼의 금지였습니다.

 

계약후 그녀는 많은 좋은 역할을 받았고, 회사는 그녀 덕에 많은 돈을 벌어 들였습니다 하지만 임신 7개월째인 그녀는 불러오는 배를 숨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그녀는 회사 대표 프랑코 크리스털디에게 이실직고했습니다. 이에 프랑코는 그녀를 안심시켰고, 그녀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임신 사실을 숨기도록 도왔습니다. 머지않아 그녀의 부모도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너무 화가나서 오랫동안 딸과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당장 수습이 필요했고 프랑코는 1958년 10월 그녀를 영국으로 보내 아이를 낳게하여 그곳에서 아들 패트릭이 태어났고 아이는 그녀의 엄마가 데려갔습니다. 아이가 8살이 되었을 때까지 그녀의 아들은 그녀의 동생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녀보다 14살 연상의 프랑코는 그녀와 비공식적인 연애를 하였고 비밀리에 결혼 후 패트릭을 그의 호적에 올렸습니다.

클라우디아 아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놀란 것은 대중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들 패트릭도 누나가 엄마라는 사실에 놀랐고 이들의 관계는 좋게 흘러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임신 중에 찍은 세 편의 영화 중 첫 번째로 찍은 영화가 바로 오마 샤리프 주연의 영화 <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영화 <형사>에서 최고 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와 함께 첫 주연을 맡게 됩니다. 그녀의 성공적인 데뷔 후에도 초기에는 영화 감독들 사이에서 그녀 목소리가 너무 허스키하고 프랑스 억양을 너무 많이 쓴다는 것을 알고 한동안은 더빙된 목소리로 나갔습니다.

 

그녀가 세상에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프랑스의 브리짓트 바르도와 자주 비교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녀를 올리브 스킨을 가진 다크 버전의 브리짓트 바르도로 묘사되곤 했는데요. 두 여배우는 관능적인 이미지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브리지트 바르도에 관하여

 

인간보다 동물을 더 사랑한 섹시 스타 브리지트 바르도 스토리

브리지트 바르도는 2023년 현재 88세의 괴팍한 노인처럼 늙어갔지만 그녀는 50년대 데뷔 이후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 미인으로 추앙받은 배우입니다. 미국에 마릴린 먼로가 있었다면 프랑스에는

winterenter.com

 

 

브리지트 바르도와 달리 카디날은 상의를 노출하거나 나체로 등장한 적이 없었습니다. 클라우디아 카디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여배우가 되기 위해 스캔들과 고백이 필요하다고 느낀적이 없습니다.저는 영화에서 저 자신이나 심지어 제 몸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배우에게 신비주의는 매우 중요하니까요.

 

 

 

1971년 두 배우는 공동 주연한 영화를 찍은 후 절친이 되어 함께 동물보호 운동에도 앞장서고 불우한 아이들도 도와주는 일에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최전성기 시절은 1963년 영화 부베의 연인 촬영 이후부터입니다. 이 영화 이후 그녀는 이탈리아 최고 여배우로 떠올랐고 이후 약 10년간 이탈리아에서 대체불가 최고로 잘 나가는 원탑 스타가 되었습니다. 또한, 헐리우드에 입성하여 1963년 영화 핑크 팬더를 찍은 이후 브리지트 바르도 못지 않은 국제적인 스타가 된 적도 있습니다. 당시 함께 출연한 데이빗 니븐은 그녀더러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다음으로 탄생한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그녀의 성공과 사생활

 

하지만 그녀는 상업적인 스타보다는 자신의 가치가 작품을 통해 인정받기를 원했기에 고국이나 프랑스 등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배우로서 커리어를 탄탄하게 쌓아 놓은 상태에서 1975년 당시 아내와 세 아이를 둔 젊은 감독 파스콸레 스퀴티에리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고 남편 프랑코는 화가 났고 자해까지하면서 클라우디아의 경력을 파괴하겠다고 위협했지만 클라우디아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질투심 많은 남편은 아내의 연인의 삶을 망치려고 했습니다. 그는 영화 촬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고 젊은 감독 파스콸레의 영화 촬영이 금지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파스콸레는 힘있는 남자의 아내를 뺏어서 자신의 경력을 망치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불행을 클라우디아 탓으로 돌렸지만 헤어지지도 않았습니다.

 

 

3년 후, 기다린 보람이 있는지 상황은 점차 나아졌습니다. 스퀴티에리는 좋은 영화를 찍었고, 클라우디아는 둘 사이에 딸을 낳아 자신과 같은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딸을 낳기 두달 전에는 아들 패트릭이 딸을 낳아 할머니가 먼저 되었고요. 클라우디아는 스퀴티에리하고는 28년간 함께 사실혼 관계로 살았습니다. 그가 그녀의 유일하고 위대한 사랑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클라우디아와 동갑인 파스콸레 감독은 2013년 29살의 나이차가 나는 배우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하고 2017년에 돌아가셨네요. 클라우디아는 평생 150편이 넘는 작품을 찍을 정도로 연기 자체를 즐겼다고 합니다.

 

 

그녀는 78세가 되어도 연기를 계속하였으며 나이 들어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녀는 시간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며 자신은 성형을 하나도 하지 않았으며 얼굴 주름을 펼 생각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저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결코 항복하지 않고 매우 활동적으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프랑스 및 이탈리아에서 그녀는 영화 배우로 독보적인 존경을 받아왔으며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삶으로 자신을 판단하지 말고 일에 관해서만 판단받기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클라우디아는 배우로 살게 한 기회를 준 것에 감사했고 스타덤의 화려함 속에서 결코 자신을 잃지 않는 삶을 산 멋진 배우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