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미 이스마엘이 모비딕의 첫 문장입니다. 개인적으로 이것이 모비딕 책의 정체성 혹은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전공자가 아니라서 문학적 문법적 해석은 할 줄 모르지만 성경 속 인물, 그것도 아브라함의 서자 출신 장남의 신분, 광야로 쫓겨났던가 하는 인물의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니 많은 생각이 듭니다.
콜 미 이스마엘
Call me Ishmael.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스무 살 무렵에 백경이란 제목으로 아주 재밌게 읽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나니 내가 읽은 것이 노인과 바다인지 백경인지, 둘 다 읽었음에도 헷갈리기 그지없습니다.
다만 그때는 둘 다 재밌게 읽었지만 나이가 들어서 경험치가 증가하니 책을 읽는 느낌이 다르고, 특히 성경적 의미까지 되뇌며 재해석하게 되니 뭔가 기분이 묘합니다.
추방된 자를 의미하는 이스마엘
성경을 읽을수록 무섭고 그러면서 세상에 진리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막연하게 듭니다. 뭔가 세상의 정답이 이 안에 들어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성경을 그것도 히브리어도 아닌 영어로 읽고 있음에도 너무 방대하고 공부할 것이 많아 그저 한 장 한 장 대충 읽고 넘기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입니다.
어렸을 때는 단순 종교로 받아들였던 성경이 종교를 배제하고 읽으니 이 세계를 구성하는 신비한 마법서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그저 해석과 추측 그리고 더한 상상과 억측으로만 나아갈 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매우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모비딕의 첫 문장 이스마엘은 과거 스토리 위주로 읽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색다른 생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아마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모비딕의 첫 문장에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테지만요. 성경 내용을 아는 분들은 뭔가 흥미롭게 여겨질 것 같습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이스마엘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의 서장자입니다. 사라가 자신의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보내며 아이를 낳게 하였죠. 그래놓고는 사라의 시기와 질투로 하갈을 못살게 굴고 하갈이 못 견디고 광야의 우물 근처였던가 에서 울고 있었더니 천사가 위로하였죠. 그리고 아이의 이름도 지어주었고요. 하지만 이스마엘이 인간 아브라함의 노력으로 낳은 아들이라면 이삭은 하나님의 의지로 태어난 아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먼저 태어난 아브라함의 서장자 이스마엘은 여종 엄마와 함께 쫓겨나 광야를 떠돌게 됩니다. 뭔가 처연하고 억울하고 부당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스마엘은 추방된 자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고요. 이슬람교도의 시초가 된 거고요. 어찌되었든 이스마엘은 아웃사이더 냄새를 폴폴 풍기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추방된 자 이스마엘은 어떤 얘기가 하고 싶은지 다음 문장을 보겠습니다.
심심한데 항해나 할까?
Some years ago- never mind how long precisely- having little or no money in my purse, and nothing particular to interest me on shore, I thought I would sail about a little and see the watery part of the world.
몇 년 전에 얼마나 정확한지는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지갑에 돈이 적거나 없거나 해안에 흥미있는 일은 전혀 없고 해서 나는 항해를 조금 더 해서 세계의 물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번역의 기술이 서툴러서 정리는 못하겠지만, 그냥 느낀 그대로는 이스마엘이 몇 년 전에 주머니에 돈도 없고 육지에는 흥미로운 일도 없고 해서 배를 타고 좀 더 바다를 항해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부분은 이스마엘은 돈이 없었고 그것이 수중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관심이 없는 대책 없는 상태 혹은 성격이란 점입니다. 지갑에 돈이 떨어졌는데 아 몰랑 될 대로 되라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죠?
그래서인지 무료함을 엉뚱한 야망 혹은 인생의 오기 같은 것으로 치환했나 봅니다.
울화를 없애는 길
It is a way I have of driving off the spleen, and regulating the circulation.
그것이 나의 울화통을 해소하거나 기분 전환이 되는 길이다. 뭐 그런 뜻이겠죠. spleen 은 비장, 지라라는 뜻인데 이곳이 우울이나 비애를 관장하나 보죠? 이스마엘이 보다 멀리 항해를 원했던 것은 자신의 울분 혹은 우울 내지는 울화를 치유할 방법이라고 여긴 것 같습니다. 바람을 쐬고 싶은 기분, 그보다 더 나아가서 바다를 보고 싶은 기분, 또한, 거기서 더 나아가 속세를 떠나듯 고깃배를 타는 청년의 심리와 같은 거겠죠. 그런데 이스마엘은 왜 울화가 쌓인 걸까요?
사고치기 전에 바다로 가자
Whenever I find myself growing grim about the mouth; whenever it is a damp, drizzly November in my soul; whenever I find myself involuntarily pausing before coffin warehouses, and bringing up the rear of every funeral I meet; and especially whenever my hypos get such an upper hand of me, that it requires a strong moral principle to prevent me from deliberately stepping into the street, and methodically knocking people's hats off- then, I account it high time to get to sea as soon as I can.
문장이 엄청 기네요. 정확한 해석보다 느낌을 얘기하자면 뭔가 침울하고 우발적이고 도발적인 사고를 치고 싶은 순간이 발동하면 최대한 인내하며 분노를 참아야 하기에, 혹은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르기 때문에 빨리 바다에 도착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내용 같습니다. 내가 당장 바다로 가지 않으면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그런 의미겠죠.
그리고 여기서 운치 있는 문장도 짚고 넘어가야겠죠. 입안에 침울한 기운이 맴돌 때, 내 영혼에 축축한 습기가 차고 11월의 비가 내릴 때, 이런 표현이 너무 적절하게 와 닿습니다. 11월에 축축하게 내리는 비가 얼마나 살을 에이고 기분 나쁘고 처량한 기분이 드는지 너무 적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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