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켜쥘 수 없는 인생의 환상 같은 매력을 주는 물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특유의 알레고리 기법으로 몇 가지 정황이 나열되는데요. 몽상가가 사랑하는 물, 예술가의 눈으로 본 물, 가난한 시인의 물, 그리고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와 물가에 온 너희들의 처지가 다르지 않다고 말해주면서 거기에 인생의 열쇠가 있다고 말합니다.
거기에는 마법이 있다
주인공 이스마엘은 지속해서 물가에 모여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굳이 가정까지 해야하나 싶지만, 뭔가 심오한 메시지를 주고 싶은가 봅니다.
Once more. say, you are in the country; in some high land of lakes.
Take almost any path you please, and ten to one it carries you down in a dale, and leaves you there by a pool in the stream. There is magic in it. Let the most absent- minded of men be plunged in his deepest reveries- stand that man on his legs, set his feet a-going, and he will infallibly lead you to water, if water there be in all that region.
시골의 호수가 보이는 높은 지대에 서 있다고 가정하고 원하는 아무 길이나 가도 당신은 물가에 도달할 거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마법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정신이 나간, 얼이 빠지거나 멍 때린 사람일수록 더욱 물가로 인도할 거라고 합니다. 그냥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Should you ever be athirst in the great American desert, try this experiment, if your caravan happen to be supplied with a metaphysical professor. Yes, as every one knows, meditation and water are wedded for ever.
거대한 미국 사막에서 목이 마른 경험이 있다면 당신의 캐러밴에 철학교수를 대동할 수 있다면 이 실험을 해보세요. 네, 모두가 알다시피 명상과 물은 영원히 하나가 됩니다.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 물을 찾는 것은 당연한 섭리이듯이 당신이 뭔가 몽상 혹은 망상에 빠져살수록, 혹은 넋 나간 상태일수록 몸이 물가로 향해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영락없이 물가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런 경험도 낯설지 않고 공감이 갑니다.
그래서 감정 풍부한 사춘기 소녀들이라던가 깊은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 절망 혹은 망연자실한 사람들이 한강 혹은 물가를 찾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건 그렇고 캐러밴에 철학교수가 제공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리송합니다.
캐러밴은 낙타를 끌고 다니는 상인 무리를 일컫는데 이곳에 형이상학적인 혹은 난해한 철학 교수가 있다는 것은 매우 이질감이 느껴지잖아요? 명상가 혹은 몽상가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요 이 역시 최종 귀결은 남다른 몽상가는 물과 친숙하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예술가가 있다
But here is an artist. He desires to paint you the dreamiest, shadiest, quietest, most enchanting bit of romantic landscape in all the valley of the Saco. What is the chief element he employs? There stand his trees, each with a hollow trunk, as if a hermit and a crucifix were within; and here sleeps his meadow, and there sleep his cattle; and up from yonder cottage goes a sleepy smoke. Deep into distant woodlands winds a mazy way, reaching to overlapping spurs of mountains bathed in their hill- side blue.
그러나 여기 한 예술가가 있다면 그는 당신을 여기 사코 밸리 중 어렴풋하게 그늘지고 고요하며 가장 매력적이고 로맨틱한 일부로 그리고 싶어 할 겁니다. 화가에게는 당신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따로 있을 테니까요. 나무들 그리고 초원, 십자가가 있고 초원 잠자고 있는 그의 가축, 오두막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등 상당히 낭만적인 묘사 일색이네요.
이건 뭘까요? 나는 절망에 가득차거나 우울감 가득인데 어떤 예술가의 눈에는 내가 그럴듯하게 보이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낭만적이고 운치 있는 소스 중 하나로 활용될 것이며 심지어 주변부로 그려진다는 것일까요?
뭔가 부족한
But though the picture lies thus tranced, and though this pine-tree shakes down its sighs like leaves upon this shepherd's head, yet all were vain, unless the shepherd's in June, when for scores on scores of miles you wade kneedeep among Tiger-lilies- what is the one charm wanting?- Water- there is not a drop of water there! Were Niagara but a cataract of sand, would you travel your thousand miles to see it?
뭔가 완벽하게 그린 풍경화 같은데도 뭔가 부족해 보인다고 합니다. 거기에 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단 한방울의 물이 보이지 않는 그림이라며 나이아가라가 모래 폭포라면 그 먼 길을 여행하러 올 거냐고 반문합니다.
가난한 시인
Why did the poor poet of Tennessee, upon suddenly receiving two handfuls of silver, deliberate whether to buy him a coat, which he sadly needed, or invest his money in a pedestrian trip to Rockaway Beach? Why is almost every robust healthy boy with a robust healthy soul in him, at some time or other crazy to go to sea? Why upon your first voyage as a passenger, did you yourself feel such a mystical vibration, when first told that you and your ship were now out of sight of land? Why did the old Persians hold the sea holy?
산책자에서 예술가 그리고 이번에는 시인이 등장합니다. 왜 테네시주의 가난한 시인은 갑자기 생긴 두 줌의 은화를 받고 현실적으로 필요한 코트를 살지 가고 싶던 로커웨이 비치 여행에 투자할 지 고민한 것일까요? 왜 거의 모든 건전하고 건강한 소년들이 틈만 나면 바다에 갈 생각을 하는 걸까요? 승객으로 첫 배를 탔을 때 배가 육지와 멀어졌단 얘기를 들었을 때 알 수 없는 떨림을 느낀 적이 있나요? 옛 페르시아인들은 바다를 신성하게 여긴 걸까요?
Why did the Greeks give it a separate deity, and own brother of Jove? Surely all this is not without meaning. And still deeper the meaning of that story of Narcissus, who because he could not grasp the tormenting, mild image he saw in the fountain, plunged into it and was drowned. But that same image, we ourselves see in all rivers and oceans. It is the image of the ungraspable phantom of life; and this is the key to it all.
요베의 형제는 주피터의 형제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요. 요베는 로마 신화에서 주피터 즉 제우스의 다른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우스의 대응 상대가 바로 로마의 요베인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이스마엘은 궁금해 합니다. 왜 제우스 이외 별도의 형제들, 즉 다른 신들을 부여했을까요,라고 물으면서 이것들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19세기 낭만주의 소설 특징이 만연체에 장황하고 알레고리 기법과 스토리보다 설명 위주 등 좀 난해하고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스토리보다는 어휘와 정보 습득 그리고 철학적인 느낌의 소설을 좋아해서 마음에 듭니다. 소설 문장은 짧고 간결하게 쓰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요. 저는 이상하게 만연체가 더 좋더라고요. 다시 소설 리뷰로 들어가겠습니다.
나르키소스와 물
그리스 신화를 왜 들먹이나 했더니 나르키소스와 물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려던 것이었나 봅니다.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와 물가에 넋을 잃고 가까이가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스마엘은 비슷하다고 본 걸까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나르키소스는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빠져든 것이지만 각기 다른 관념을 지닌 필멸의 인간도 결과적으로 나르키소스와 다를 바 없다고 본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이렇게 귀결 짓습니다. 하지만 이미지는 같습니다. 우리 자신이 강과 바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잡을 수 없는 유령의 삶, 즉 움켜쥘 수 없는 인생의 환상 그리고 이것이 그 모든 것의 열쇠라고 합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 역시 어렴풋이 이해가 갑니다. 이해하기도 포착하기도 어려운 존재의 불가사의하고 예측 불가능한 측면들을 삶의 불가해한 유령을 암시하는데요. 이렇게 삶의 불가해한 유령이 모든 것의 열쇠라고 하는 것은, 불가해한 삶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세상의 더 넓은 신비와 복잡함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직면하여 탐구하는, 마치 일리아스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필멸의 인간이 불멸의 신들과 대응하고 성숙했던 것처럼 이스마엘이란 이름으로 활약한 작가의 내면 세계도 도전과 응전의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아직 챕터 1이 다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꼼꼼하게 의미를 파악하며 읽으니 더 재미있고 매력적으로 와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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