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 13번의 결혼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상속자 토미 맬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결혼을 자주한 이유는 여자를 좋아해서도 있지만 결혼할수록 돈을 벌었기 때문이라는데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존스 맨빌의 상속자 토미 맨빌
토미 맨빌은 20세기 중반 미국 상류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난봉꾼? 중 한 명이었습니다. 1894년 4월 9일에 태어난 그는 석면 등을 제조하는 존스 맨빌의 손자였습니다. 그러나 후계자였던 그의 아버지와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아서 반복적으로 재정을 끊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고 그러한 재력을 바탕으로 11명의 여성과 13번의 결혼을 하여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 한 여자와는 두 번 재혼했고 한 번은 아내가 사망해 홀아비 시절을 보낸 적도 있습니다.
그는 평소 사생활은 극도로 보호받기를 원했지만 결혼 생활만큼은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것을 좋아한 이기적인 관종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의 첫 번째 결혼 생활은 1911년 17살에 시작됩니다. 그는 어떤 합창단 소녀플로렌스 휴버에게 빠져 만난 지 5일 만에 결혼하였고 유럽 여행 중이던 그의 아버지는 뉴욕에 도착하면 당장 결혼식을 취소하겠다고 엄포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아들 토미 맨빌은 뉴저지에서 결혼식을 준비했고 그도 안 되면 다른 주에서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경제적 지원을 끊었고 그러자 그는 아버지의 피츠버그 공장에서 일주일에 15달러를 받고 일을 해야 했습니다.
토미의 남다른 결혼과 이혼
그리고 토미는 1917년 그의 첫 번째 아내와 별거에 들어갔고 1922년 4월에 이혼하였습니다. 그래도 별거 포함해서 11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는 게 놀라울 정도입니다.
토미의 두 번째 결혼은 1925년 9월 아버지의 속기사로 일하고 있던 22살 로이스 아를린 맥코인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재산 5천만 달러 중 천 달러를 증여받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해 토미의 아내는 이혼을 청구했고 일 년에 만 구천 달러의 합의금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1929년에 사망했습니다.
토미 맨빌은 스스로를 은퇴한 사업가나 상속자 등으로 말하고 다녔고 그의 세 번째 결혼은 1931년 5월 썩 유명하지 않은 배우 정확하게는 쇼걸 아본 테일러와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결혼한 지 34일 만에 헤어졌고 그해 11월에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1933년 10월에는 쇼걸 마르셀 에드워즈와 네 번째로 결혼하였지만 1937년 10월 20만 달러의 위자료를 받고 이혼하였습니다.
1941년에도 22살의 쇼걸 보니타 에드워즈와 다섯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1942년 1월에 이혼했습니다. 1942년 10월에는 20살이 된 여배우 빌헬름마 코넬리 보즈와 여섯 번째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2월에 이혼했습니다. 20살 밖에 안 됐지만 빌헬름마는 토미와 이혼하면서 어떤 위자료 청구도 하지 않아 나름의 품위를 지켰다는 평입니다.
주로 쇼걸에 금발
그의 일곱 번째 결혼은 1943년 8월 서니 아인워스와 하였지만 이들은 결혼한 지 8시간 만에 헤어졌고 두 달 후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여덟 번째 결혼은 1945년 12월 영국에서 그를 인터뷰 중이던 27살의 기자 조지나 켐벨과 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51세였습니다. 비교적 오래갈 것 같은 이들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녀는 1952년 남편과 아침을 먹기 위해 자동차로 운전하고 오다 사고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러더니 같은 해 7월에 정체 모를 아니타와 아홉 번째 결혼을 하였고 8월에 멕시코에서 이혼하였습니다. 그리고 위자료로 10만 싱가포르 달러를 받아갔다고 합니다.
토미의 열 번째 아내는 텍사스 쇼걸 팻 개스톤으로 이들은 1957년 5월에 결혼하였고 같은 해 11월에 하였습니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그의 결혼과 이혼 중에 대부분은 쇼걸 출신이었다는 것이 인상적인데요. 그중에서 두 명의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는 것도 참 기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중에서 두 명의 아내와 재혼도 있었다는데요. 누구인지는 알고 싶지도 않네요.
그의 마지막 결혼
그리고 토미의 마지막 결혼이라고 할 수 있는 열한 번째 결혼은 1960년 1월에 하였는데 그의 나이 66세였고 서독 출신의 그녀는 스무 살의 웨이트리스에 두 살 된 딸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토미는 1967년에 사망하였고 그녀는 110만 달러의 상당한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의미심장하게도 4년 후에 그녀는 요절하였습니다.
그가 남다르게 여자를 좋아해서 여러 번의 결혼을 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꿀 반전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창업주 그의 할아버지가 유언으로 손자가 결혼하면 100만 달러를 주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몇 번인지는 명시가 되지 않아 토미는 이 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17살 때부터 결혼을 계획한 것이고 그로 인해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이 이해가 되고도 남음입니다.
1929년 롤스로이스를 최초로 소유한 사람이기도 했던 그는 평생 위자료와 변호사 비용으로 2백만 달러 이상을 지출했다고 하지만 그의 재산에 십 분의 일 정도밖에 쓰지 않았다고 하면 그의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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