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영양왕 이후 약 30년 정도가 지나서 고구려에는 정변이 일어납니다. 642년 영양왕의 동생 영류왕이 왕이 됩니다. 당시 중원의 정세는 수나라가 멸망하고 당이 등장합니다. 당의 2대 태종이 굴지의 대제국을 이루었습니다. 신라, 백제가 그에게 머리를 숙였습니다. 고구려에게도 머리를 숙이라고 했더니 내부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영류왕 등 귀족들은 웬만하면 당과 화친 정책을 쓰자고 합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연개소문이나 일부 귀족들이 당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연개소문이 미치지 않고서는 당에 대한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정변의 원인이라고 추측하는 의견이 다수입니다.
연개소문의 정변
연개소문은 아버지가 대막리지 그러니까 당시 총리였던 귀족 가문 출신입니다. 연개소문은 아버지가 죽자 아버지 지휘를 이어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고구려 유력 귀족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막리지를 계승하면 안 된다고 반발한 것입니다. 그러자 연개소문이 다른 귀족들에게 머리를 숙여서 잘하겠다고 납작 엎드리면서 막리지 자리를 이어받습니다. 그는 천리장성 축조 파견 업무를 맡고 랴우뚱에 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갈등이 많았다고 합니다. 기어이 요동 지역에 군사를 장악하고 정변을 일으키게 됩니다. 614년 그는 보장왕이란 꼭두각시 왕을 세우고 자기는 막리지 지위에 있으면서 정치를 하였습니다.
백제의 상황과 신라의 김춘추 그리고 연개소문
한편, 백제는 의자왕이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의자왕은 어릴 때부터 똑똑하기로 소문이 자자했었습니다. 해동증자라고 불렸는데 중원의 사서에 등장할 정도로 똘똘한 왕자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된 후 의욕이 너무 앞선게 문제였다고 봅니다. 그는 지금의 합천을 공격하고 윤충 장군이 대야성 공격을 하였습니다. 밖에서 안을 쓰러뜨릴 수 없는 구조에 윤충이 오랫동안 포위했으나 함락을 못했습니다. 여기서 신라는 좌중지란을 보입니다.
대야성 성주 김품석의 아내 고타석이 김춘추의 큰 딸 그러니까 김품석이 부하였던 거밀의 마누라를 겁탈하고 맙니다. 그래서 부하 거밀이 안에서 문을 열어 대야성이 함락당하고 맙니다. 성주와 성주 식솔 및 주요 장수들을 죽이고 소금에 절여 사비성으로 보내집니다. 이 소식을 들은 실라의 막후 실세 김춘추가 통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김춘추는 고구려의 연개소문에게 가서 군사를 빌리러 갑니다. 연개소문도 김춘추를 범상치 않은 인물로 보고 트집을 잡습니다. 연개소문이 말하길 우리가 너네 신라를 도와서 백제를 멸망시키는 건 일도 아닌데 그전에 선행 조건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중령 이북의 땅을 고구려에게 돌려주면 백제를 멸망시켜 주겠다고 말합니다.
동북아 정치 변동의 출발점
그러자 김춘추는 영토 문제를 홀로 처리할 수 없다고 안된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연개소문이 김춘추를 가두라고 지시합니다. 고구려 감옥에 갇힌 김춘추. 그때 고구려 귀족 선도 해지가 나타납니다. 그는 이 위기에서 벗어나라고 힌트를 주고 갑니다. 김춘추는 연개소문을 만나 여왕 만나서 중령 이북 땅 돌려주겠다고 말하고 풀려납니다. 김춘추가 이후 바나 건너 왜혈도로 쫓아갑니다. 그도 안되니 당에 쫓아갑니다. 그게 동북아에 정치 변동을 일으키는 출발점입니다.
645년 안시성 싸움 이후 신라와 당의 연합
그런데 당 왕조문이 정변을 징취하겠다고 645년에 고구려를 침공합니다. 그러나 안시성에서 저지를 당합니다. 매서운 겨울이 다가오자 당태종은 퇴각합니다. 이것이 645년 안시성 싸움입니다. 수나라 당나라의 고구려 원정 실패를 분석하니 보급로가 문제였습니다. 사람은 먹어야지 굶고는 싸울 수가 없습니다. 보급로가 너무 길어서 당나라는 신라가 배후에서 쳐주면 고구려 전력 분산도 되고 신라가 군량미 책임지면 승산이 있겠다고 봐서 나당 동맹이 맺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백제가 먼저 멸망하고 648년 나당 연합이 설립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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