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고원 남서부에서 탄생한 아케메네스 왕조는 제3대 다리우스 1세 시절 전차, 기마, 보병을 조합한 군단의 활동으로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그 지배력이 이집트 지역,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지역, 인더스에 이르렀고 인구도 약 5000만 명에 달했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은 자신을 제왕의 왕이라 칭하고 조로아스터교의 광명신 아후라 마즈다의 대리인이라는 권위를 부여했다.
제국의 흥망성쇠
다리우스 왕은 모든 땅을 20개의 행정구로 나눈 후 페르시아인을 총독, 즉 왕의 대리인으로 삼아 각 주의 통치를 맡겼다. 총독(사트라프)이 세금으로 모은 많은 양의 은이 수도에 축적되어 대량의 은화로 주조 및 유통되었다.
은화를 유통시킨 최초의 제국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는 11대에 걸쳐 230년간 지속되다 기원전 330년, 알렉산더3세의 지휘 아래 중장보병과 기마병으로 구성된 원정군에게 공격당해 멸망한다. 알렉산더 제국은 훗날 지중해 제국의 기초를 마련했다.그 후 서아시아에서는 기원전 3세기 중반에 이란계 기마유목민이 파르티아 왕국(아르사케즈 왕조)을 건국하여 페르시아인 제국을 부활시켰다.
로마의 제1차 삼두정치의 기사계급 크라수스는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수만 명의 병사가 포로로 잡혔다. 그후 기원전 224년 파르티아는 옛 아케메네스 왕조의 땅인 이란 고원 남부에서 생겨난 사산 왕조에 의해 멸망했다.
사산 왕조
사산 왕조는 조로아스터교를 바탕으로 왕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복고적 상업 제국이었다. 신흥 사산 왕조는 전성기를 지난 군인황제 시대의 로마 제국을 위협하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황제와 함께 7만 명의 로마 병사를 포로로 잡아들이는 등 바다의 제국 로마를 압도했다. 그러나 사산 왕조는 중앙아시아에서부터 진격한 기마유목민 에프탈(이란계 유목민족)의 침략으로 혼란에 빠졌다. 에프탈은 5세기 중엽부터 약1세기 동안 맹위를 떨친 이란계 유목 민족이다. 백색 훈족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산 왕조 최대 전성기 시절의 왕 호스로 1세가 중앙아시아의 터키인 돌궐과 연합하여 에프탈을 멸망시켰다. 그후 6세기 후반 이후에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밑에서 지중해 세계를 재편한 비잔티움 제국과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7세기 전반 사산 왕조는 왕위를 둘러싼 내분으로 쇠퇴, 651년 이슬람교도의 침입을 받아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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