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팔레스타인 지역은 황량한 사막지대에 위치해 있다. 이들은 상업으로 생계를 꾸리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번영을 시샘했다. 그래서 최후의 심판 신앙을 계승한 사막의 종교, 유대교는 배타적이고 관용없는 유일신 신앙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유대교의 탄생 배경
사막에서의 생활과 엄격한 신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사람들은 가혹한 요구를 반복하는 유일신에게 기대는 것 외에는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에 위치하여 낙타를 이용한 사막 교역의 중심지이자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제국군이 통과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기원전 6세기가 되자 메소포타미아에서 세력을 잡은 신바빌로니아가 귀족에서 서민에 이르는 수많은 히브리인들을 수도 바빌론으로 강제 연행하여 대규모 지구라트(바벨탑)등을 건설하는데 동원했는데 이것이 바빌론 유수 혹은 포수라고 한다.
바빌론 유수 이후 유대인은 방랑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민족적 고난의 시기에 예언자가 등장하면서 천지를 창조한 유일신 야훼와 히브리인 간의 계약에 기초를 두는 유대교가 형성되었다.
낙타를 사용하는 사막 상업의 중심지에서 형성된 유대교의 신흥종교인 기독교는 지중해로, 이슬람교는 사막과 오아시스, 초원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유대교는 여러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메소포타미아의 동해보복법, 홍수설화, 조로아스터교의 최후의 심판 사상 등 주변 각지의 다양한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농경지대에서 불교가 발달한 이유
반면 몬순지대에 속하는 갠지스 강 유역에는 고온다습한 기후, 높은 쌀 생산력을 바탕으로 조화와 공생을 기조로 하는 다신교가 형성되었다. 갠지스 강 유역에 도시국가가 성장하고 사변성이 중시되면서 신들과 결합하기 위한 의식과 제를 중시하는 기존의 브라만교가 혁신되고 우주와 자연의 근본원리를 추구하는 우파니샤드 철학이 탄생했다.
우파니샤드 철학의 특징
우파니샤드는 힌두교의 이론 및 사상적 토대를 이루는 철학적 문헌들의 집성체이다. 즉 우주의 진리를 파악하여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체계적인 사색이 진행되었다. 우파니샤드 철학은 윤회와 업을 기본 철학으로 삼고 있다. 인도에서는 여름과 겨울에 정기적으로 바람의 영향이 바뀌는 몬순에 의한 거센 우기와 건기의 순환이 고난의 연속과 순환으로 인식되었고 개인의 업이 이러한 가혹한 순환을 만들어내는 원인이라 여겼다. 그리하여 업을 극복하고 윤회로부터 해탈하고자 요가와 같은 다양한 수양법의 개발을 종교적 과제로 삼았다. 이러한 해탈에 대한 집념은 인도의 자연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짐작케한다.
갠지스 강 유역에서 도시국가가 성장한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에는 싯다르타의 불교, 마하비라의 자이나교가 형성되었다. 두 종교 모두 해탈에 이르는 수양법을 설파했다. 불교의 경우 원래 신이 존재하지 않았고 수양을 중시하는 사색적인 도시형 종교였다.
가족 중심주의 유가의 창시자 공자
중국에서는 도시 간 전쟁이 격심해져 큰 영역의 통합이 추진된 춘추시대말기부터 전국시대에 걸쳐 각지의 지배자가 부국강병에 이바지하는 통치원리를 추구했다. 나라의 통치와 번영을 위한 학술을 설파하는 학자(제자백가)가 배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학자의 시초는 조상숭배를 근간으로 가족애의 관점에서 사회의 성립을 사유하는 유가의 창시자, 공자였다. 특히 조의 경우 소가족 단위로 재배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이 사회의 기초 단위로 여겨진 거다. 또한, 공자가 근본이념으로 설파한 인은 가족애이므로 권력자가 자기 일족에게 이익을 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고 이는 부패와 타락으로 이어졌다.
제가, 치국 평천하처럼 공자는 국가나 세계가 가족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간주했다. 반면 법가는 엄격한 법에 의한 질서 확립을 주장했다. 겸애라는 무차별적 애의 실현을 설파한 묵자는 유가 사상이 내포하는 본질적인 약점을 지적했다. 유가는 그 후 성선설의 맹자, 성악설을 설파하고 예를 중시한 순자의 유파로 나뉘었다.
무위자연설 노자
무위자연설을 설파한 노자와 만물은 모두 똑같다고 보는 만물제동설을 설파한 장자의 도가에게는 권력을 위해 봉사하는 학문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차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제자백가는 이후 중국 사상의 원류가 되는데 특히 유가는 오랜 기간에 걸쳐 중화 제국을 지탱하는 이념적 지주 역할을 했다. 중화 세계에서는 가족, 부족의 테두리를 뛰어넘은 국가의 형성이 최대 과제였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정치색이 강한 사상과 학문이 요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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