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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방인(알베르 카뮈) 리뷰

by winter-art 2021. 9. 25.

부조리한 현대 사회를 이 소설 만큼 잘 표현한 책이 없을 정도다.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20세기 최고 문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그리고 저마다 생각하는 견해도 다르다.

 

카뮈의 이방인 감상 소고

 

 

뫼르소가 생각하는 내면 깊은 곳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아래서 변화 없이 일상적인 생활에 남에게 피해 주는  없이  지내고 있던 그였다. 그는 주변 모든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호의적인 사람이었다.

 

태양과 태양이 쏟아내는 알지 못할 현기증의 근원은 무엇일까. 존재 안에 내재된 근원적 에너지를 의미하는 거였을까. 어떤 충동의 발현을 의미하는 건지 심오한 생각에 빠지게  부분이다. 태양을 상징하는 병화(丙)는 내면에는 깊은 우울을 담고 있다고 했다. 가장 밝은 것이 가장 어둡다는 반증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이방인의 소설에 주된 기조를 이루는 강렬한 태양은 일종의 암시겠지만 인간의 깊은 우울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카뮈가 말하고 싶던 부조리함은 궁극에는 삶과 인간에 대한 애착 때문이 아니었을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내용 훑어보기와 함께 리뷰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틀 휴가 신청을 냈지만 사장은 좋아하지 않았다. 날씨가 무척 더웠다. 하던 대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모두들 그를 동정하였다. 가는 내내 잠을 잤다. 양로원 원장이 책망하듯 그에게 말했고 그는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였다. 그의 엄마는 양로원에 처음은 자주 울었다는데 습관 때문이었다고 여겼다. 양로원 관리인은 그에게 지방은 시체를 빨리 매장하는 좋다고 하여 관리인 아내에게 구박을 들었다.

 

 

뫼르소는 관리인 얘기에 흥미를 가졌고 말에 동의하였다. 관리인은 극빈자로 양로원에 왔으면서 양로원에 있는 노인들을 하대하였다. 자신이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데에 뫼르소는 적잖게 놀랐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 생각이 났지만 엄마 앞에서 피워도 좋을지 망설였지만 관리인과 함께 피웠다. 어느 정도 친근감을 느꼈던지 뫼르소는 관리인에게 사소한 부탁을 했는데 관리인이 들어주지 않았다. 뒤로 뫼르소는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엄마의 장례식

 

 장례를 준비하는 방안은 따뜻하고 평온해서 잠이 왔다. 얼마 조문객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울면서 우울한 얼굴 일색이었다. 울음소리를 그만 듣고 싶었지만 그만 울라고 수도 없었다. 그들은 망연자실로 잠이 들었고 잠에서 다음날은 친밀감으로 돈독해진 기분을 느끼는 같았다. 그러나 뫼르소는 피곤했을 뿐이다. 

 

장례를 치르는 날은 산책하기 좋은 날처럼 날이 맑기 그지없었다. 넘치는 햇빛의 열기가 사람을 기분 좋게도 했지만 점차 기운을 빠지게 했다. 다들 힘겨움과 신경질이 흥건하게 배어났다. 장례를 마치고 잠에서 깨어나니 토요일이었다. 이틀 휴가 신청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장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지친 심신도 달랠겸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장례 후 마리 카르도나란 여자를 만난 뫼르소

 

물속에서 마리 카르도나란 여자를 만났다. 둘은 물가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 영화를 보기로 했고 그녀는 뫼르소의 검은 넥타이를 궁금해 했다. 엄마가 어제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그녀는 움찔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그건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사람들은 조금씩 잘못이 있기 마련이었다. 마리도 저녁 때가 되자 모든 것을 잊었다. 그녀와 영화를 보고 키스를 하고 함께 집으로 왔다. 

 

눈을 뜨니 그녀는 없었다. 늘어지게 자다가 평소 가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려 했지만 사람들이 꼬치꼬치 질문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싫었다. 집안에서 빈둥거리다 발코니로 나가 사람들 구경을 했다.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그렇게 일요일은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끝났고 내일 다시 일할 생각을 하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으로 돌아간 뫼르소 동네 사람들의 부조리한 일상

 

 일상으로 돌아갔고 일을 너무 많이 했다. 동료 에마뉘엘과 트럭에 올라타는 장난을 쳤고 에마뉘엘이 괜찮은 거지? 하고 물었다. 뫼르소는 괜찮다고 말하고 빠른 속도로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셨다. 동네 사람들의 부조리한 일상이 전개 된다. 8 동안 개를 키우며 구박하는 노인을 불쌍하다고 하지만 뫼르소는 누가 불쌍한지 모르겠다. 그렇게 말하는 이웃 레몽 생테스는 자신이 나쁜 아니라 다혈질이라서 그렇다며 싸움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자기가 시작한 아니라 녀석이 시작한 거라고 강조했다. 그는 뫼르소에게 조건부로 친구가 되겠다고 말했고 뫼르소가 대답이 없자 친구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래서 괜찮을 같다고 말하니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러자 그는 자신에게 정부가 있다는 속속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난잡한 정부를 때리고 응징하는 데도 미련을 버리겠다며 후회와 충격을 동시에 있는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뫼르소는 그의 부탁대로 레몽의 이슬람 출신 정부에게 편지를 썼으며 그는 만족했다. 

 

다시 마리를 만났다

 

일주일이 지났고 마리를 만났다. 그녀에게 욕정을 느끼며 서로 뒹굴고 놀았다. 마리는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고 그는 그건 아닌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슬픈 표정을 짓다가 다시 발랄해져 그에게 키스했다. 그때 레몽의 방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에게는 난폭하던 레몽은 경찰에겐 급격히 비굴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이 돌아가고 레몽은 뫼르소를 찾아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가 적절히 응수해주자 레몽은 증인이 되어주었으면 한다고 하였다. 사이 이웃 영감은 개가 달아나 쩔쩔매고 있었다. 대하던 행동과는 다르게 영감은 개를 잃어버린 훌쩍이며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뫼르소도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그래서 저녁도 굶은 채로 잠이 들었다.

 

 

레몽이 회사로 전화를 했고 그것은 사장이 싫어하는 일이란 것을 알고 있어서 심기가 불편했다. 사장은 그것과는 상관없이 그에게 파리로의 로테이션을 권했고 그는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마리가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뫼르소는 수동적이기만 하다. 사장이 권하던 파리 이야기를 하다가 그는더럽지. 비둘기들과 컴컴한 정원뿐이야. 사람들은 모두 허옇고 말이야.” 라며 파리에 담긴 감정을 표현한다. 

 

개를 잃어버린 노인의 신세 한탄

 

 홀로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작고 묘한 여자가 와서 합석을 요구한다. 식사 딱히 일도 없어서 그녀를 따라갔다. 보도의 가장자리를 따라 재빨리 걷는 그녀를 놓쳐서 되돌아오고 말았다.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금방 잊었다. 이웃 개를 잃어버린 살라마노 영감은 뫼르소에게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다. 아내가 죽고 무척 외로워서 개를 키웠는데 성미가 못됐지만 좋은 개였다고 말했다. 그리곤 뫼르소의 엄마가 개를 무척 예뻐했다는 말과 엄마를 양로원에 보냈을 사람들이 수근거렸지만 자신은 뫼르소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했는지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뫼르소는 동네 사람들이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는지 미처 몰랐고 충분한 돈이 없어 엄마를 양로원에 넣은 최선이었다는 대답을 했다. 영감은 나서서 이렇게 말했다.

 

제발 오늘 밤은 개들이 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혹시 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뫼르소는 장례식장에서 지인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감이 개를 잃어버린 슬픔를 토로하는 장면에서 뫼르소의 깊은 내면이 투영되었다고 본다.

 

해변에서 만난 아랍인 두 명

 

일요일에 레몽과 마리와 함께 수영장을 가기로 했다. 가다가 아랍인 무리를 보았다. 명이 레몽을 가리켰다. 마리가 궁금해하자 아랍인들이 레몽에게 원한이 있어서 그런다고 대답해 주었다. 레몽의 친구 마송은 해변 가장자리의 별장에서 살고 있었다. 마송의 접대를 받으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열한 삼십 밖에 되었는데 밥을 허둥지둥 먹었고 햇빛은 수직으로 내리 꽃히고 있었다. 뫼르소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빛 때문에 반쯤 잠든 상태라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바닷가 저끝에서 푸른 작업복을 입은 아랍인 명이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마송과 레몽은 그들과 싸움을 했고 레몽은 그들이 휘두른 칼에 상처를 입었다. 의사는 아니라고 했지만 레몽은 화를 내며 욕을 했다. 바람을 쐬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오래도록 해변을 거닐었다.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었고 레몽이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바닷가 끝에 이르렀다. 그때 아랍인 둘을 다시 만났다. 아주 느긋하고 평온한 얼굴이었다. 레몽이 주머니에 있는 권총에 손을 댔지만 녀석은 미동도 없었고 둘은 서로 마주보고만 있었다. “ 녀석은 아무 말도 했잖아. 이대로 버리는 비겁한 일이야.”

 

 

뫼르소는 남자답게 결투를 하라며 권총은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만약 다른 녀석이 뛰어들거나 칼이라도 뽑으면 자신이 버린다고 했다. 권총을 건네 받은 뫼르소는 권총을 수도 있고 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랍인들이 뒷걸음치며 도망쳤고 레몽과 다시 별장으로 돌아왔다. 뫼르소는 햇볕을 많이 쏘인 탓에 머리가 울리는 같았다. 다시 바닷가를 향해 걸었다. 햇볕 때문에 이마가 부풀어 오르는 같았다. 태양과 태양이 쏟아내는 알지 못할 현기증을 이겨내려고 힘을 다해 버텼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총을 쏘았다

 

그는 오랫동안 걸었다. 바위에 가까이 다가갔을 레몽과 상대했던 녀석이 다시 돌아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혼자였다. 엄마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같은 태양이었다. 그때와 똑같이 이마가 아팠다.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는 발자국 앞으로 내딛었다. 그게 어리석은 짓이고, 걸음 몸을 옮긴다고 해도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걸음을, 걸음을 옮겼을 뿐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칼을 뽑아 그를 겨누었다. 칼날은 속눈썹을 쑤셨고 괴로운 눈을 파내는 같았다. 바로 그때 모든 흔들렸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아랍인의 몸에 다시 발을 쏘았다. 

 

 

체포 된 뫼르소

 

체포된 여러 심문을 받았다. 변호사를 선임했는지 묻는 그래야만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사건이 아주 간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진지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모든 것들이 장난처럼 여겨졌다. 변호사는 그날 마음이 아팠느냐는 질문을 했지만 그는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대답했다. 자신은 엄마를 사랑했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이다.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어느 정도는 바라기도 하는 법이라고 말하자 변호사가 매우 흥분한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지나치게 솔직한 태도

 

 

육체적 욕망이 감정보다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설명했다. 확실한 것은 엄마가 죽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것뿐이었다. 변호사는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똑같다는 ,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상 그런 것들은 모두 소용이 없는 일이었고 귀찮기도 해서 단념하고 말았다. 그의 지나치게 솔직한 태도는 여러 가지 오해를 야기했다. 예심 판사는 뫼르소의 입장에서 얼토당토않고 무의미한 질문만 계속하고 있었다. 형무소에 갇힌 동안 면회 마리는 나오면 결혼하자는 얘길 했다. 그는 마리에게 욕정을 느꼈다.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자신이 자유로운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소한 욕망을 충족하지 못하는 불편함을 제외하면 그다지 불행하지도 않았다. 하루보단 어제나 내일이란 단어만 의미가 있었다. 다섯 달이 지났다는 말을 믿기는 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제나 같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양철 밥그릇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아무리 웃으려 해도 정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심각하고 음침하기만 했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햇볕 가득한 날 공판이 열렸다

 

공판이 열린 날은 햇볕이 가득한 날이었다. 증인들은 그에 대해서 좋지 않은 진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의 장례식 그가 했던 일상적인 행동들을 고하고 있었다. 검사는 엄숙한 어조로 뫼르소는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 해수욕을 하고 섹스를 하고 영화를 보며 웃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마리는 그가 나쁜 짓을 사람이 아니라고도 말했지만 서기는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마송도 그가 얌전하고 친절하며 정직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아무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살라마노 영감이 그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지만 아무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는 같았다.

 

마지막으로 레몽의 차례가 되었다. 레몽은 대뜸 그가 결백하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사실을 요구하는 것이지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검사는 사건에서 우연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고 반박했다. 변론이 계속되는 동안 범죄에 대한 얘기보다 뫼르소 자신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뫼르소는 가만히 있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래도 가끔씩 간섭을 하고 싶었다. 그럴 때면 변호사가아무 말하지 마세요. 그래야 일이 풀려요.” 하고 막았다. 어찌 보면 뫼르소를 놓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운명은 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결정되어 버리고 있었다. 정말로 다정하고 상냥하게 , 그는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뉘우치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다고 설명해 주고 싶었다. 그는 언제나 앞으로 일어날 일이라든가 오늘, 또는 내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던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이해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진실은 어쩌면 사실과는 것처럼 느껴지던 대목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이해하려고 하니까. 

 

검사는 뫼르소가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규칙을 무시하고 있으므로 사회와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인간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가장 기본적인 반응도 없으므로 인정에 호소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는 대충 생각나는 대로 꺼냈다. 아랍인을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 말이다. 그는 약간 말을 더듬으며 다들 우습게 생각할 알면서 그건 태양 때문이었다고 빠르게 말했다.

 

 태양 때문에 살인을 했다

 

그동안 나는 오직 가지만을 명료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뫼르소가 단지 뜨거운 태양 때문에 살인을 했다는 것이다. 내용 중에는 검사의 따분한 변론보다는 그의 이야기 주제와는 상관없는 단편적인 말들이나 몸짓, 아니면 쓸데없이 장황한 부가 설명들만이 흥미를 끌어당겼다고 구절이 나온다. 여태 나는 매사 그런 관점으로만, 그런 식으로 살았던가 싶은 반성을 했을 정도다.   

 

그는 엄마가 들려줬던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어느 살인범이 사형 집행 되는 것을 보러 갔다. 얘기를 들었을 아버지에 대해 불쾌하게 여겼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당연한 같았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에게 유일한 흥밋거리라는 것을 어째서 그때는 알지 못했던 걸까..

 

 

서른 살에 죽나 예순 살에 죽나 마찬가지다

 

 하늘이 초록빛으로 변해 가는 것을 보니 저녁이었다. 새벽과 항소라는 가지가 계속 버티고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이 새벽녘에 온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는 언제나 갑작스레 무슨 일을 당하는 것을 너무 싫어했다. 그들이 보통 일을 하러 오는 애매한 시각이 그에게는 가장 괴로웠다. 결국 서른 살에 죽는 것이나 예순 살에 죽는 것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부속사제의 면회를 거절하다 받아 들였다. " 면회를 거절하는 겁니까?” 그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대답을 했다. 그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남들이 알려 주었고, 그로 인한 대가를 치르고 있으니 이상 자신한테 뭔가를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사제는 그를 설득하지 못했고 그는 슬픈 그를 바라보았다. 그를 껴안아도 되겠느냐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사제는 다른 생애라는 것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뫼르소가 외쳤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

 

현세를 회상할 있는 그런 !”

하나님 얘기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들어난 부분이라고 있겠다.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일보다 당장의 오늘, 내일이 중요한 뫼르소는 지극히 정상이고 건전한 인간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냐? 살인범으로 고발당했으면서도 자기 어머니 장례식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게 된다 한들 그게 뭐가 중요한가? 모두 마찬가지로 죄인인 것이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처음부터 다시 준비가 되었던 틀림없다. 아무도, 누구도 엄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릴 권리는 없다.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려면 내게 남은 소원은 오직 하나, 내가 외로워하도록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그날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 증오에 가득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카뮈가 말하고 싶던 부조리함은 궁극에는 삶과 인간에 대한 애착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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