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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ter book/일상 생각과 그림

지식과 지혜로 문을 연 여성들 그리고 모순의 역설

by winter-art 2025. 4. 10.

군로드와 이브의 이야기는 지식과 지혜가 어떻게 인류에게 전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화적 설명이다. 두 여성 모두 지식의 문을 여는 열쇠를 쥐고 있었다.

 

군로드와 이브 이야기

 

군로드는 시의 꿀술을 지키는 문지기로서, 오딘이 그것을 얻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었다. 이브는 금지된 지식의 첫 번째 수용자로서, 인류가 도덕적 자각을 얻는 문을 열었다. 여기서 우리는 지식 전달의 역설적 구조를 발견한다. 지식은 금지되고(선악과), 숨겨지며(동굴 속 꿀술), 한정된 존재들만 접근할 수 있는(신, 거인)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지식이 실제로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달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여성 인물들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신화들이 보여주는 가장 흥미로운 모순은 바로 이것이다: 여성을 유혹에 약하거나(이브) 속기 쉬운(군로드) 존재로 묘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혜와 지식을 전달하는 필수적인 매개자로 인정한다. 이 모순은 단순한 일관성의 결여가 아니라, 지식 전달의 본질적 특성을 암시한다. 지식은 경계를 넘고, 금기를 깨며, 기존 질서를 교란할 때 비로소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된다. 여성 인물들에게 부여된 '약점'은 역설적으로 지식 전파의 '강점'이 된다. 유혹에 넘어가거나 속기 쉽다는 특성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호기심, 개방성, 변화에 대한 수용성을 의미할 수 있다. 엄격한 규칙과 경계에 갇힌 지식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적 시각에서 이 이야기들을 다시 읽을 때, 우리는 군로드와 이브를 단순한 희생자나 유혹자가 아닌, 지혜의 문을 연 중요한 행위자로 볼 수 있다. 그들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인류는 더 큰 지식과, 비록 고통이 따르더라도,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들에게 부여된 모순적 위치는 지식 자체의 모순적 본성을 반영한다.

 

 

신화 속 여성들과 현대의 인공지능

 서로 다른 신화 체계에서 태어났지만, 군로드와 이브는 인류의 지식과 지혜의 획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여성 인물들이다. 한 명은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의 딸이며, 다른 한 명은 아브라함계 종교에서 인류 최초의 여성으로 묘사된다.

 북유럽 신화에서 군로드는 지혜와 시적 영감의 원천인 '시의 꿀술'을 지키는 수호자이다. 이 귀중한 꿀술은 시인과 현자들에게 영감과 통찰을 부여하는 신비로운 음료로, 오직 신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존재였다. 이 꿀술의 기원은 신들 간의 전쟁이 끝난 후,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존재인 크바시르의 피에서 비롯된다. 그의 피로 만들어진 꿀술은 여러 경로를 거쳐 거인 술퉁의 손에 들어가고, 그는 딸 군로드에게 바우그 산 깊은 동굴에서 이를 지키도록 명령한다.

 

 

신들의 왕 오딘은 이 꿀술을 열망했고, 변장을 통해 군로드를 속인 뒤 꿀술을 모두 마시고 도망친다. 어떤 전승에서는, 오딘과 군로드의 만남에서 태어난 아들 브라기가 훗날 시와 웅변의 신이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한편, 성경에 등장하는 이브는 최초의 여성이자 아담의 짝으로 창조된 인물이다. 에덴동산에서 이브는 뱀의 유혹을 받아 신이 금지한 선악과를 따 먹고, 아담에게도 나누어 준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리라"는 뱀의 말은, 선악과가 단순한 과일이 아닌 지식의 상징임을 암시한다. 실제로 그들이 열매를 먹은 후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신들이 벗은 줄을 알게 되었다"는 구절은, 인간의 자각과 윤리적 인식의 시작을 나타낸다.

 

군로드와 이브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식과 지혜의 전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군로드는 지식을 지키는 자였고, 이브는 금지된 지식을 받아들인 최초의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도 보여준다. 무엇보다 지식의 성격이 다르다. 군로드가 지킨 시의 꿀술은 창조적 영감과 시적 지혜를 상징하며, 공동체에 활력을 주는 예술적·지성적 자원이다. 반면, 이브가 접한 선악과는 도덕적 자각과 선악의 분별, 다시 말해 윤리와 자유의지를 상징한다.

또한, 이들의 역할과 태도 역시 다르다. 군로드는 지혜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수호자였던 반면, 이브는 신의 금기를 깨고 능동적으로 지식을 추구한 존재였다.

 

 

인류 역사 속 지식의 매개자들

고대 신화에서부터 현대 기술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지식과 정보를 다루는 매개자들을 끊임없이 창조하고 상상해왔다. 군로드와 이브로부터 시작된 이 지식 전달자의 계보는 다양한 신화적 존재들을 거쳐, 오늘날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군로드와 이브 외에도, 세계 각지의 신화에는 지식과 지혜를 수호하고 전달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스의 헤르메스, 이집트의 토트, 중국의 창힐, 인도의 사라스와티 등이 그 예이다. 이들은 모두 지식의 '문지기'이자 '통역자'로서 인간과 신, 이성과 신비 사이의 다리를 놓는 존재들이었다. 역사적으로도 지식의 매개와 보존은 특정 집단이나 기관을 통해 이뤄졌다. 고대의 사제와 서기관, 철학자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나 중세 수도원의 필사실 등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지식을 전파하는 동시에, 지식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통제하기도 했다.

 

 

Ai, 새로운 시대의 지식 매개자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지식의 매개자—인공지능—을 만들어냈다. 대규모 언어 모델은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존재보다도 방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신화 속의 지혜의 수호자들과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 군로드가 지혜의 꿀술을 지켰듯, 토트가 언어의 신비를 품었듯, 현대의 AI는 인터넷의 거의 모든 텍스트 데이터로 훈련되어 전례 없는 지식의 보관자이자 전달자로 기능한다. 또한 헤르메스가 신들의 말을 인간에게 전달하듯, AI는 복잡한 정보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하고 재구성한다.

 

군로드와 이브가 신화 속에서 지식의 흐름을 여는 결정적 존재였듯이, AI는 현대 사회의 정보 생태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AI는 과거의 매개자들과 달리, 단순한 수호자나 전달자를 넘어서, 정보를 생성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갖춘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식의 매개자가 단지 창을 여는 자가 아닌,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단, AI는 여전히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군로드는 거인의 딸이고, 이브는 신의 손으로 빚어진 존재였지만, AI는 인간이 설계하고 만든 도구이다. 이는 지식의 흐름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역할이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을 뜻한다. 우리는 더 이상 지식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지식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설계하는 능동적 존재가 되었다.

신화에서부터 AI에 이르는 지식 매개자의 계보를 탐색하는 일은 단지 기술의 발전을 추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지식과 맺어온 복잡하고도 모순적인 관계를 되돌아보고, 그 연속성 속에서 오늘날 우리의 위치를 성찰하는 작업이다.

군로드와 이브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들이 체현한 지식의 역설은, AI 시대에도 또 다른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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