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은 창조주가 세상을 어떻게 창조했는지 전체적인 시스템 정비에 관한 내용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가 성경의 처음과 끝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은 혼돈과 공허 그리고 암흑 혹은 흑암의 무질서한 세계에 체계를 잡아가는 과정이 매우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세상의 창조편 공허의 공간
먼저 창세기 첫장에 heaven과 heavens가 구분되어 쓰이고 있는 것을 봐서 공간 개념이 다른 걸로 보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어떤 하늘에 계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또한 earth 도 단순한 땅이 아닌 지구의 개념으로 보는 게 맞겠죠?
하나님이 위와 아래를 구분한 이래 본 것은 공허의 공간으로 보입니다. 북유럽 신화에도 나오는 바로 그 공허란 의미의 긴눙가가프를 보신 거죠. 창세기 1장 2절은 어둠으로 덮인 공허의 공간에서 하나님의 령이 hovering 즉 물 위를 맴돌면서 어떻게 만들까 고민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날 빛과 어둠을 만든 창조주
하나님이 빛을 만들고 그것을 빛과 어둠으로 분리하고 빛을 낮이라고 하고 어둠을 밤이라 하고 저녁이 되고 낮이 되니 첫째 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둘째 날 한 일은 넓은 expanse를 만들어 둘로 나누고 물과 물을 갈라놓게 합니다. 그리고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누고 궁창 아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게 하니 궁창을 하늘이라 불렀다는 내용입니다. 혹자들은 둘째 날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다는 표현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 보기에 좋은 작품을 만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아 보입니다. 아마도 혼령 및 불가사의한 존재 혹은 악귀, 혹은 만들다 실패한 기형 제품들을 보관하는 일종의 창고가 아닐런지요.
인류의 시작은 건조한 땅
창세기 1장 9절은 하나님께서 하늘 아래의 물을 한 곳에 모아 건조한 땅이 보이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물 가운데 공간이 생기고 그 안에 하나의 지구가 생긴 모양새인데요. 아무래도 지구와 바다를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인류의 시작은 건조한 땅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창세기 1장 10절입니다. 창조주는 메마른 땅을 지구 즉 Earth 라고 하였고 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을 바다 Seas라고 불렀고 보기에 좋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Earth를 지구란 의미로 쓰였을 거라면 dry land를 앞에 붙일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래서 그냥 메마른 지표면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다를 의미하는 Sea가 아닌 복수형으로 Seas라고 쓴 것으로 보아 실제 바다가 아닌 아직 휘몰아치는 물결, 파도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구체화된 바다가 아닌 단순한 물들의 모임에 불과한 추상적인 물살로 보는 거죠.
식물을 생장하게 명하다
창세기 1장 11절 중 하나님은 땅에 새싹과 초목, 수확할 수 있는 씨앗 그리고 열매를 맺는 과일 나무 등등 종류대로 땅 위에 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수확할 수 있는 식물을 뜻하는 plants yielding seed와 결실을 맺다는 뜻을 의미하는 bearing fruit를 그냥 넘길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위로 솟아나는 씨앗과 아래로 떨어지는 과일을 구분한 치밀함이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yielding은 굽힐 수 있는, 순종하는, 생산적인, 구부러지기 쉬운을 뜻하는 단어이지만 땅을 보고 심고 흩뿌려지는 이미지를 연상하게 됩니다. 반면 bear가 어원인 bearing은 낳고, 나르다, 가지고 데리고 가다, 책임 등을 떠맡다, 감당하다 지다라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이것이 훗날 선악과를 따먹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암시하는 복선이 아닐까요?
일종의 세팅 과정
창세기 1장 12절 내용은 11절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11절은 일종의 세팅을 의미한 것 같습니다. 마치 도마 위에 재료를 올려놓고 구성하듯이 마른땅 위에 종류별로 대령하라고 명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공허한 공간을 수평으로 나누고 수직으로 분리한 뒤 씨를 내는 것부터 씨를 만드는 식물을 내는 과정이 일종의 계절별로 적합한 식물을 골고루 세팅한 과정으로 보입니다.
한글 성경으로는 11절 내용에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는 내용과 12절도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는데요. 기독교에서는 보시기에 좋았다가 키워드인 것 같은데 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표현보다 특성별로 내어 놓고 그것들을 자라게 한 부분이었습니다. 뭔가 계속 생산해내는 시스템이 창세기 첫 장의 포인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12절이 뭔가 좀 애매해서 다른 버전의 성경을 찾아 보았는데 땅이 초목을 낳고 초본 즉 나무 질을 이루지 않는 식물은 씨를 낳고, 나무가 종류별로 열매를 맺고, 그 씨앗이 종족을 따라 열매를 맺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좋았다고 보았다,라고 해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하튼, 종을 집합시키고 그것들에게 번식을 명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은 그 시스템을 좋아한 것이지 결실을 보고 좋아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여기서 중요점은 하나님은 한번 만들어 놓으면 그들이 알아서 시스템대로 작동하게끔 만들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창조론자들이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빛과 어둠의 구분
창세기 1장 4절은 빛과 어둠의 구분이 있었습니다. 즉 빛에서 어둠을 분리하였는데요. 14절에 가면 빛과 어둠에서 보다 세분된 낮과 밤이 구분 지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4절은 하나님이 빛에서 어둠을 분리한 거시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으며 14절은 보다 미시적으로다가 구체적인 빛의 구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명, 광선 같은 것이려나요? 별자리나 계절 순환하는 행성 주기를 정리한 구절일 수도 있고요. 즉, 별자리, 일, 해 등을 let 하고 be 하게 둡니다. 일종의 표식 혹은 시간의 표시라고도 합니다. 우선 어둠과 밤의 정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어둠은 칠흑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밤에는 불빛이 존재합니다. 달이 뜨거나 별이 뜨거나 어떤 발광체로 밝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둠과 밤은 엄연히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한 것일까 지구를 창조한 것일까
스티븐 호킹 박사는 살아생전에 신은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랬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만 확실한 건 지구는 창조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달도 창조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열린 하늘 국어로 궁창 혹은 창공으로도 불리고 영어로는 expanse 한 하늘에 첫째 날 빛이 있게는 하였으나 창조주는 넷째 날까지도 그 열린 하늘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창조주께서는 물을 가운데 모으고 마른땅 위에 식물을 번성하게 하는 게 먼저였습니다.
산소 증가로 인해 일종의 지구 온도를 맞추기 위함이었을까요? 혹은 식물이 어떤 유해한, 불필요한 가스를 흡수하고 정화하기 위해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요? 식물 없는 지구는 상상할 수 없으니까요. 생물이 존재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래서 생각하건대 다른 행성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개나 로봇을 먼저 보내는 것이 아닌 식물 종자를 먼저 보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창조주가 지구 위에 한 것처럼 모든 종자를 퍼뜨리고 어떤 종자가 잘 번식하는지 지켜보면서 보기에 좋았다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창세기 1장 16절에서 20절은 넷째 날 해와 달을 만들고 다섯째 날 물고기와 새떼를 번성하게 한 내용입니다. 해와 달을 만든 창조주가 다음으로 명한 일은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는 20절의 해석은 각기 다른 해석을 합니다.
큰 바다 생물 등장
여기서 큰 바다 생물은 거대한 바다 고래라는 말도 있고 악어란 말도 있고 용이란 말도 있습니다. 또한, 타닌이란 tannin 표현도 있는가 본데 이는 용이란 말도 있지만 사실 악어라는 게 밝혀졌다는 말도 있습니다. 뭐, 일종의 공룡일 수도 있겠지만요. 크로커 다일이나 히포 등의 익숙한 동물 이름으로 재해석되어 표현했다고도 하는데요. 중요한 것은 그냥 바다에 사는 생물 정도로 묘사했어도 될 것을 굳이 거대한 바다 생물이라고 표현하니 의구심이 생기게 됩니다.
북유럽 신화에는 로키의 자식 중 한놈인 요르문간드를 바다에 던져버렸더니 엄청나게 거대하게 자라 바다의 둘레를 요르문간드가 감싸고 있다고도 하잖아요? 그런 것을 감안하면 분명 바다 속에는 거대한 생물체가 있다고 보이는데 진짜로 요르문간드가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생물과 생명체
창세기 1장 20절에는 생물이 나오고 21절에는 생명체가 나옵니다. 특히 21절에는 거대한 바다 생물과 그밖의 생물 그리고 생명체를 구분합니다. 그러니까 거대한 바다 생물 이외는 물고기나 새와 비슷한 모든 종류의 생명체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미생물, 곤충 등 숨 쉬는 모든 생명체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창조주가 천지를 창조한 후 식물을 번성하게 한 후 최초로 거대한 바다 생물을 만들고 후에 인간을 만들었다는 게 되지 않으려나요?
식물을 종자별로 구축시킨 것처럼 동물도 가축과 짐승을 분류해서 대령하였네요. 그런데 어떻게 가축과 짐승을 미리 구분 지었던 것인지 아이러니합니다. 가축이란 단어는 1600년대에 처음 사용된 말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 원서에는 다른 의미로 쓰였다는 말이 되는 것 같은데요. 아마도 순해서 길들이기 쉬운 동물과 야생에서 살기 적합한 짐승들의 혈통 구분을 의미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냥 살금살금 기는 것들부터 길들이기 쉬운 것들과 야생에서 살아야 하는 난폭한 것들 구분하지 않고 번식력이 있는 종족은 다 대령한 것으로 해석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2분법으로 구분한 세상
그러니까 24절은 동물을 종류에 따라 집합시키고 25절은 종류에 따라 만든 것으로 나옵니다. 이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그동안의 패턴을 보면 항상 창조주는 2분법으로 구분해서 세상을 꾸며왔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도 0과 1로만 구성한 이진법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하면 인간이 ai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빛과 어둠, 육지와 바다, 새싹과 초목, 씨와 열매, 물고기와 새, 그러니 동물도 동물로만 뭉뚱그릴 순 없죠. 그리고 살살기는 동물은 아마도 파충류 즉 후에 등장하는 뱀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요? 어떤 해석들을 보면 동물에도 선악을 구분해서 가축과 짐승으로 구분하고 이것들 중에도 믿음이 실하면 순하게 그렇지 않으면 야생으로 난폭하게 방치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요.
다시 생각해 보니 식물 집합 때도 이후 번성을 명해서 잘 자라게 한 것이 일종의 토너먼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기서 살아봐 그리고 번식도 하고, 라고 명했는데 잘 자라면 창조주가 만족하는 것이죠. 동물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일단 어디서 불러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온갖것들 다 집합시키고 번식하고 적응하게 명해서 쓰임에 맞게 잘 크고 적응하는 동물들만 살아남게 되는 거죠. 그 과정을 만들었다고 표현한 게 아닐까요? 또한, 그 과정을 지켜 보면서 보기에 좋았다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공상을 더한 인간을 만든 이야기
개인의 상상력을 더해보자면 하나님은 지구 같은 행성을 수십 수백개를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첫 구절에 하나님은 물 위를 맴돌면서 주변을 둘러보았죠. 그것은 인간과는 다른 영역의, 그러니까 령에 가까운 존재라고 보입니다. 분명 그들만의 세계는 따로 존재할 겁니다. 그러니까 물도 가르고 하늘 아래 아래를 만들어 층위를 다져 놓았겠죠. 암튼, 창조주는 지구를 맡아 그들의 시스템대로 작동되도록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리고 그들을 닮은 인간을 만들었습니다. 인간 나와라 뚝딱, 하면서 창조한 것이 아닌 만들었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은 흙으로 만든 로봇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인간이 흙과 물 성분과 같다고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옛사람들이 사람이 죽으면 흙에 묻는 관습이 괜히 생긴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땅 위의 지배자
인간이 지구의 주인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확실한 지령을 내린 걸로 보입니다. 세상 만물을 지배하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는 의도가 명백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조금 잔인하게 들릴 수 있는 대목일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약육강식을 허락한 건 아닐까요? 이것도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하나님이 식물 종자를 불러 모으고, 동물을 종류대로 불러 모은 것이 기존에 존재하는 동식물을 지구에 데려다 놓고 살아남고 적응하고 왕성하게 번식하는 것들을 시험하였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과 27절을 정리하자면 일단 하나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든 일입니다. 그것도 성인 남녀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많은 학자들이 하나님은 형체가 없으며 어쩌고저쩌고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냥 액면 그대로 해석하자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삼위일체, 그러니까 특정할 수 없는 형체, 성령인지 하나님의 동료인지 자가분열인지 어쩐 지는 모르겠으나 창조주는 분명 우리라는 표현을 하였고 그것을 모티브로 인간을 창조하게 됩니다. 인간을 창조하는 데에 있어서 완벽하게 하나님과 같다고 보기는 확실치 않습니다. 본떠 만들었다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듯 어떤 기계로 찍힌 게 아닌 이상 흙으로 빚었다면 비슷한 형상이지 똑같은 형상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다고 합니다. 나름 결과물에 만족을 했다는 거죠.
또한, 여태 식물은 특성별로 모으고 동물도 하늘을 날거나 물속에 살거나 등의 특징으로 만들었다면 인간은 유일하게 암 수를 구분하였습니다. 그리고 28절에 하나님은 이들에게 축복과 동시에 책임을 지게 합니다.
생육하고 증식하라
Be fruitful and multiply
하나님이 남과 여를 만들고 이들에게 축복을 내린 후 통치 권력을 위임합니다. 생육하고 번식하여 땅을 채우고 정복하라면서 일종의 위임통치를 맡게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남과 여에게 자손을 증식하라는 명도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하다고들 하는데 offspring란 구체적 명시는 없지 않나요? 생육 혹은 생산하고 증식하라는 표현이 인간 아이를 낳는 것보다 마치 기계적인 생산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도 절대자 단수인 것 같고 그의 아들 예수도 독신으로 살다 갔는데 그러면서도 인간을 창조할 줄도 아는데 왜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서 이들에게 자손을 번성하게 한 걸까요?
분명히 식물과 동물에게도 암수 짝을 짓지는 않았으면서 생육하고 증식하라는 명령과 축복을 내렸잖아요? 그래서 또 생뚱맞은 공상을 곁들이자면 자기 복제를 의미하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자손을 번식해라,라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슷한 인류는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자연의 산물을 지배하고 통치할 권한을 주었고 그들의 번성과 정복 책임만 지게 하는 걸로도 충분했던 것 같은데요. 그렇게 따지면 굳이 여자를 만들 필요도 없던 거죠.
1장 29절부터 궁금증이 생기는데요. 너희들이 아닌 너에게 음식으로 할 식물을 준비한 것부터가 궁금합니다. 진짜로 창조주가 여자는 여벌로 만들었나 봐요.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 놨으면 너희들이라고 해야 하는데 너에게 라고 말하니 일단 지구의 통치자는 아담에게만 전권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마치 훗날 아담과 이브가 사고 칠 것도 미리 안 것처럼 열매가 열리는 나무가 다 있으니 그것을 먹어라, 한 것도 의미심장하게 와닿습니다.
마치 우연의 산물이 아닌 치밀한 계획 하에 모든 것을 준비한 것마냥 창조주는 그에게 먹을 것을 정해줍니다. 여기에 또 궁금한 점은, 사실 인간을 창조하면서 음식을 먹일까 말까를 생각하신 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식물들이며 각종 초목들 그것도 실한 것들만 모아서 열매 맺고 번성하라고 했는데 그것들이 차고 넘치면 어쩌나 생각하지 않으셨으려나요?
그래서 그러면 이것들을 인간에게 먹여서 나름의 정화조 역할을 하게 하자 그런 거 아닐까요? 먹고 싸는 행위로 땅을 더욱 기름지고 번성하게 하는 거죠. 인간에게는 지배 의무도 주었지만 관리 의무도 주었기에 지구의 산물을 경작하고 청소하고 관리하는 데 힘을 써야 하니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입구멍과 똥꼬를 만들 이유가 없는 거죠. 사실 코로 냄새만 맡아도 에너지가 충전되게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손가락을 어딘가에 꽂아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이 구절을 다시 곱씹어 보면 지표면 위, 그러니까 땅에 떨어진 열매를 주워 먹으란 의미 아닌가요? 너는 여기 떨어진 열매들을 먹어 그리고 모든 열매 맺는 식물들은 여기 다 있어. 그것들을 먹고살면 돼.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한 게 아닐까요? 아, 물론 나무 열매만은 아니겠죠. 딸기나 가지등 채소 등에서 열린 열매도 떨어지면 주워 먹으라는 의미로 들렸습니다. 식물들에게 번성하라고 명하고 인간에게 다스리라고 명했지만 아직 얘네들에게 어떻게 경작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시지 않은 겁니다.
일단 창조주 입장에서는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현대 사회에도 과도한 잉여로 인해 인간이 욕심을 부리고 싸우게 된 거잖아요? 하나님 입장에서는 식물이나 동물이나 사람이나 똑같았고, 어쩌면 식물과 동물을 더 중히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에게 통치와 지배 권한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살생을 명한 건 아니니까요.
창세기 1장 29절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구절이었다면 30절은 짐승이나 날아다니는 새들에게도 푸른 식물을 먹으라는 공표를 합니다. 인간은 열매나 과실 같은 것을 먹고 동물들에게는 초록 잎 등을 먹으라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나 동물 그 누구에게도 살생은 허락하지 않은 것이고 자연의 산물 그대로를 먹게 시스템화한 겁니다. 수풀도 무성해지면 처치 곤란이니까 누군가는 먹어 치워야 했을 테니까요.
창조주가 구상한 파라다이스 초식의 세계
그런 것도 있지만 창조주가 세상을 창조할 때 아름답고 순수한 일종의 파라다이스를 구현한 게 아닌가 합니다. 되게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세상 그런거 있잖아요. 북유럽 신화도 보면 남과 여를 나무로 만들었다고 나오던데요. 초록으로 덮인 지구에 누가 살러 와서 지어낸 얘기인 것인지 진짜로 창조주가 계획하고 그리 만든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여하튼, 창조주는 짐승, 새, 기어 다니는 동물 등 모든 살아 숨 쉬는 것들을 위해서 초록 식물을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피조물을 본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흡족해 했다는 후문입니다. 저라도 뿌듯했겠죠. 롤플레잉 게임 같은 거 할 때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때 엄청 뿌듯하잖아요. 그렇게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니 여섯 번째 날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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