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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혼을 지켜낸 6만 절의 서사시 샤나메

by winter-art 2025. 12. 6.

세계 문학사에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에 비견되지만, 샤나메는 그 분량이 7배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이란의 가정에는 코란 옆에 항상 샤나메가 놓여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책은 이란인들의 자부심이자 정신적 지주다. 피르다우시는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시의 씨앗을 뿌렸으므로"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샤나메는 페르시아인들에게 영원히 늙지 않는 신분증이 되어 민족의 혼을 지키고 있다.

 

1. 펜으로 쌓아 올린 불멸의 성

인류 역사상 단 한 명의 작가가, 단 한 권의 책으로, 한 문명 전체의 언어와 정체성을 구원한 사례가 있을까? 페르시아의 시인 피르다우시가 쓴 '샤나메(Shahnameh, 왕들의 책)'가 바로 그런 기적의 서사시다.

기원후 10세기, 페르시아는 이슬람 제국의 정복 이후 고유의 문화를 잃고 아랍화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때 피르다우시는 무려 30여 년이라는 세월을 바쳐 고대부터 내려오던 페르시아의 신화, 전설, 역사를 6만 절에 달하는 방대한 시로 집대성했다.

그는 아랍어 차용을 철저히 배제하고 순수 페르시아어만을 고집했는데, 이는 단순한 문학적 시도가 아니라 언어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었다.

2. 신화에서 역사로 이어지는

샤나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신화 시대'다. 최초의 왕과 문명의 시작, 악마와의 투쟁을 다룬다. 여기서 인류는 불을 발견하고, 금속을 다루며, 사회 제도를 만든다. 두 번째는 '영웅 시대'로, 샤나메의 가장 방대하고 핵심적인 부분이다. 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들과 사악한 왕, 마법사들이 얽히고설키며 대서사시를 이끌어간다. 마지막은 '역사 시대'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부터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아랍에 멸망하기까지의 실제 역사를 다루는데, 비록 신화적 윤색이 가미되었으나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다. 즉, 샤나메는 '세상의 시작부터 제국의 멸망까지'를 관통하는 거대한 연대기다.

🌟 페르시아 신화에 관하여

폭군 자하크와 대장장이 카베의 혁명

 

신화 시대의 에피소드 중 가장 강렬한 것은 폭군 '자하크'의 이야기다. 악신 아흐리만의 꾐에 빠져 어깨에 뱀 두 마리가 솟아난 자하크는, 매일 뱀에게 인간의 뇌를 먹이로 줘야 하는 저주에 걸린다. 이 끔찍한 공포 정치는 무려 천 년간 지속되는데, 이에 맞선 것은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었다. 자신의 아들들이 뇌를 먹히고 희생당한 대장장이 '카베'가 가죽 앞치마를 깃발처럼 창끝에 매달고 민중 봉기를 일으킨다. 이는 왕권 신수설이 지배하던 고대 사회에서 민중의 저항권을 신화적으로 형상화한 매우 독특하고도 급진적인 서사다.

 

3. 비극의 정점

영웅 시대의 주인공은 단연코 '로스탐'이다. 그는 페르시아를 수호하는 절대적인 무력의 상징이다. 하지만 샤나메를 세계 문학의 걸작으로 만든 것은 그의 무용담이 아니라 그가 겪는 비극성 때문이다. 서로의 얼굴을 모른 채 적군으로 만난 아버지 로스탐과 아들 소흐랍의 대결은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치열한 전투 끝에 로스탐은 소흐랍의 가슴에 단검을 꽂고, 죽어가는 아들이 보여준 표식을 보고서야 그가 자신의 아들임을 깨닫고 오열한다. 이 '부자(父子)의 비극'은 운명의 잔혹함과 전쟁의 허망함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훗날 서구 문학의 매튜 아놀드 등 수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4. 왕권의 상징 파르(farr)와 군주의 자격

샤나메를 관통하는 핵심 사상은 '파르(Farr)'라는 개념이다. 이는 신이 내린 왕의 영광, 혹은 카리스마를 뜻한다. 파르를 가진 자는 정당한 통치자가 되어 나라를 번영시키지만, 오만해지거나 악에 물들면 파르는 그를 떠나버린다. 전설적인 성군 잼시드조차 오만함에 빠지자 파르를 잃고 몰락했다. 피르다우시는 이를 통해 왕권은 혈통만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선을 행할 때만 유지된다는 정치 철학을 설파했다. 이는 당시 부패했던 권력자들을 향한 시인의 준엄한 경고이기도 했다.

 

페르시아인의 영원한 신분증

오늘날 이란인들에게 샤나메는 단순한 옛날이야기 책이 아니다. 이란의 가정에는 코란 옆에 반드시 샤나메가 놓여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피르다우시는 샤나메의 말미에 "나는 이 시를 통해 흙으로 돌아갈 나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다"라고 적었다.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제국은 무너지고 왕조는 수도 없이 바뀌었지만, 그가 남긴 6만 절의 시구는 페르시아어라는 그릇에 담겨 이란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샤나메는 문학이 어떻게 한 민족의 영혼을 지탱하고 역사를 보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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