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맥 맥카시(Cormac McCarthy, 1933–2023)는 1933년 7월 20일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찰스 조지프 맥카시 주니어였으나 훗날 아일랜드적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코맥’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가족은 가톨릭 신앙이 강했고, 어린 시절 그는 테네시 주 녹스빌로 이주해 남부적 문화와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이는 그의 작품 세계가 지닌 특유의 남부 고딕적 색채에 결정적인 토양을 제공했다.
그의 아버지는 변호사로 일했고,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한 중산층 가정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다섯 남매 가운데 네 번째로 태어나 큰 가족의 일원으로 자랐다. 집안은 물질적으로 궁핍하지 않았지만,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가톨릭 윤리관 속에서 성장했다. 이후 가족이 테네시 주 녹스빌로 이주하면서 남부적 문화, 특히 보수적 가치관과 농경 사회적 분위기를 가까이 접했다. 이러한 배경은 그의 소설에서 반복되는 종교적 상징, 도덕적 갈등, 남부 고딕적 색채의 원천이 되었다.
1. 코맥 맥카시의 창작과 방랑
1950년대 말 그는 대학에서 공부를 이어가다 중도에 그만두고 공군에 복무했다. 이후 다시 테네시 대학교에 복학했지만 정규 학위 과정을 마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학을 다니는 동안 라디오 드라마를 쓰면서 문학적 가능성을 드러냈다.
1960년대 초반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렸고, 1965년 첫 장편 소설 《과수원의 수호자(The Orchard Keeper)》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윌리엄 포크너의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문체로 평가받으며, 미국 문단에 새로운 목소리가 등장했음을 알렸다.
맥카시는 물질적으로 궁핍한 시기를 오래 겪었다. 첫 아내와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중에도 가난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1960~70년대에는 미국 남부와 유럽을 떠돌며 집필했다. 특히 스페인과 아일랜드 체류 경험은 그가 인간 존재와 운명에 대해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지게 했다. 이 시기 《아우터 다크(Outer Dark, 1968)》, 《아들에겐 말하지 말라(Child of God, 1973)》 같은 작품들이 나왔는데, 인간의 타락과 폭력을 극도로 차갑게 응시하는 시선이 뚜렷하다.
2. 절반은 가난 절반은 풍요
코맥 맥카시는 젊은 시절과 중년까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가난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문학 외에는 거의 생업을 두지 않았고, 상업적인 활동이나 강의, 원고료 이외의 수입원을 만들려 하지 않았다. 초창기 몇 권의 소설은 문단에서 호평을 받았으나 판매량은 미미했고, 그 결과 그는 아내와 함께 오래된 농가나 버려진 집에 거주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실제로 첫 아내 앤 데릴 크라크와의 결혼 생활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깨졌다는 평가도 있다.
그는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중고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집필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만으로 지냈다. 해외 체류 역시 ‘유럽 유학’이라기보다는 저렴한 배편과 간소한 숙소를 전전하는 식이었다. 유명세를 얻기 전까지는 인터뷰나 홍보 활동도 거의 하지 않았기에, 가난은 그의 일상적인 배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난에서 벗어나게 된 전환점은 1992년 《모두 다 예쁜 말들》의 성공이었다. 이 작품은 전미도서상을 받으며 대중적 판매도 뒤따랐고,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는 “국경 3부작”의 명성으로 안정적인 인세와 영화 판권 수익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05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영화화되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그는 비로소 대중적 성공과 경제적 안정을 동시에 얻었다. 《로드》는 퓰리처상과 영화화를 통해 더 큰 수익과 명성을 가져왔다.
후기에는 뉴멕시코 산타페 연구소와 같은 지적 공동체에서 활동하며, 더 이상 금전적 어려움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번역·출판되었고, 영화 판권 역시 고가에 거래되었다. 따라서 맥카시는 말년에는 문학적 성취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3. 코맥의 결혼과 두 아들
첫 번째 아들, 칼럼 맥카시
코맥 맥카시는 첫 번째 아내 리 앤 크라크와의 사이에서 아들 칼럼 맥카시(Cullen McCarthy, 1962년생) 를 두었다. 칼럼은 언론계에 종사했으며, 미국에서 칼럼니스트와 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아버지처럼 문학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글쓰기와 사회적 논평 활동을 이어가며 나름의 길을 걸었다.
두 번째 아들, 존 프랜시스 맥카시
세 번째 아내 제니퍼 윈클리와의 사이에서는 존 프랜시스 맥카시(John Francis McCarthy, 1999년생) 가 태어났다. 코맥은 말년에 이 아들을 깊이 사랑했고, 《로드(The Road, 2005)》를 집필할 때 직접적으로 영감을 준 인물이기도 했다. 작품 속 ‘아들과 아버지의 여정’은 맥카시가 어린 아들을 지켜보며 느낀 존재적 두려움과 희망을 투영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족 관계의 특징
맥카시는 세 차례 결혼했고, 두 아들은 서로 다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체로 은둔적 생활을 했지만, 후기에는 둘째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특히 중요했고, 작품 세계에도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로드》의 퓰리처상 수상 연설에서 그는 이 작품이 “아들에게 바치는 이야기”임을 직접 밝혔다.
다른 것은 몰라도 경제적 상황 등을 감안 할 때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의 삶의 괴리감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졍제적 여유와 사랑을 듬뿍 받고 성장한 둘째와 궁핍한 환경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많이 겪었을 칼럼과 인생이 아련하게 와 닿는다. 심지어 둘은 부자 관계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나이차가 상당하다. 개인적인 친밀함은 전혀 없어 보인다. 남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인다.
4. 걸작의 탄생과 작품 특성
코맥이 1985년 발표한 《핏빛 자오선(Blood Meridian)》은 그의 문학적 전환점을 이룬 걸작으로 꼽힌다. 19세기 서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극도의 폭력, 신학적 상징, 운명에 대한 탐구가 결합된 대작으로 평가된다. 초창기에는 지나치게 잔혹하다는 이유로 널리 읽히지 않았으나, 이후 현대 미국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들어 그는 “국경 3부작”으로 불리는 《모두 다 예쁜 말들(All the Pretty Horses, 1992)》, 《국경을 넘어(The Crossing, 1994)》, 《평원의 도시들(Cities of the Plain, 1998)》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 작품들을 통해 그는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 국경 지대를 배경으로 한 서부 서사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으며, 1992년에는 전미도서상과 전미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 출간된 《로드(The Road)》는 아버지와 아들이 종말 이후의 황폐한 세계를 떠도는 이야기로, 단순하면서도 심연 같은 서사를 담아내며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영화화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보다 앞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2005)》 역시 2007년에 코엔 형제의 영화로 제작되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맥카시의 이름을 전 세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맥카시는 정치적 발언을 거의 하지 않은 은둔적 인물로, 특정 정당이나 이념에 노골적으로 가담한 기록은 없다. 그는 인터뷰를 극도로 꺼렸고, 문학 외적인 발언을 자제했기에 그의 정치적 성향은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 세계와 주변 증언을 통해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의 소설은 대체로 제도나 정치 이념에 대한 신뢰보다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폭력성과 무상함을 응시한다. 《핏빛 자오선》이나 《로드》 같은 작품에서 체제나 국가, 이데올로기는 거의 부재하거나 무력한 배경으로만 제시되고, 대신 인간과 세계의 원초적 폭력, 생존, 도덕적 혼란이 전면에 놓인다. 이는 특정 정치 노선을 따르기보다 철저히 허무주의적·실존주의적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말년에 뉴멕시코 산타페 연구소와 깊이 교류하며 과학자, 철학자들과 우주론·언어학·의식 연구에 몰두했다. 이는 사회적·정치적 논쟁보다는 인간 존재와 우주의 근본 구조에 더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코맥 맥카시는 중산층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정치적으로는 특정 진영에 속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의 세계관은 정치적 구호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 곧 인간과 세계의 폭력성, 신의 부재, 도덕의 흔들림 같은 문제에 집중했다. 그 결과 그는 미국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 잡았으면서도, 동시에 정치적 논쟁에서 자유로운 거의 유일한 작가로 남게 되었다.
5. 은둔의 작가
맥카시는 평생 은둔적이고 대중적 활동을 꺼리는 작가였다. 그러나 그는 과학과 철학에도 큰 관심을 가졌고, 뉴멕시코 산타페 연구소에서 과학자들과 교류하며 언어, 수학, 우주론에 관한 담론을 나누었다. 이러한 지적 관심은 후기 작품들의 주제의식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
2022년 그는 《승승(The Passenger)》와 《스텔라 마리스(Stella Maris)》라는 두 편의 연작을 발표했다. 이는 수십 년 만의 신작으로, 인류 문명의 종말, 의식과 존재, 수학과 과학의 한계 같은 철학적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는 2023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가 남긴 문학적 유산은 “미국 문학의 최후의 거인”이라는 평과 함께 길이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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