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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창고

샤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올빼미

by winter-art 2021. 9. 4.

샤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올빼미는 배수아가 극찬한 책이라 읽어보았는데 딱 배수아 스럽다. 배수아 스럽다는 게 좋거나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배수아스럽다는 걸 읽어보면 알 거다. 이런 류의 글을 관념적이라고 해야 하는지 정념적이라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으나 정서상 좋게 작용할 리는 없다. 이란의 대표소설이면서 읽으면 자살하게 된다하여 금서로 지정된 책이었을 정도라고 하는데, 읽고 왜 죽어야 하는지 왜 죽는지도 모르겠다. 허무하고 우울하면서 깊은 고독의 맛을 뼈아프게 느낄 수는 있지만 정작 죽음과는 무관한 기분이 들었다.

 

 

샤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올빼미 리뷰 및 발췌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아주 천천히 읽었다. 마음 먹고 집중해서 읽으면 2시간 안에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가독성이 좋은 편이 아닌 것을 감안하더라도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읽을 수 있었을 것을 근 한 달 내내 붙잡고 있었다. 뭔가 집중해서 읽고 싶은 기분도 있었고 아껴서 읽고 싶은 기분도 들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뭔가 깨달음을 얻거나 그런 걸 기대한 건 아니다. 뭔가 영감을 얻을 만한 소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있었고 문장 하나하나를 읽으며 정말로 죽음의 늪에 빠질 수 있으려나? 하는 호기심이 더 작용했을 뿐. 내게 이 책은 그냥 우울하고 몽환적인, 뭐랄까 새벽에 흙을 파는 찜찜한 기분이랄까? 그랬다.

 

 

삶에는 서서히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이 상처의 고통이 어떤 것인가 타인에게 이해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런 믿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평범하지 않은 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 몰이해의 원인은 인류가 아직 이 병에 대한 치료법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신다거나 마약의 힘을 빌어 고통을 잊는 것만이 이 병의 특효약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효과는 일시적이다. 어떤 시점이 지나면 고통이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될 뿐이다. 일상적인 경험을 초월한 이 병의 비밀을 어느 누가 파헤칠 수 있을까?

 

 

 

 

이 병의 예를 한가지 기록해 두려고 한다. 그것은 나의 존재 전체를 뒤흔들어 놓은 사건이었다. 그것이 남긴 지독한 상흔은 내가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내 삶을 중독시켰다. 그저 남들이 내 이야기를 믿어 주기를, 혹은 적어도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두려운 심연

 

나의 유일한 두려움은 나 자신을 알지도 못한 채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삶의 여정에서 나는 나와 타인들 사이에 가로놓인 두려운 심연을 발견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침묵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가능한 한 오래 나의 속마음을 남에게 발설하지 않는 것임을. 인간들과 연결되어 있던 마지막 유대의 끈을 끊어 버린 이후, 나에게 남은 단 하나의 욕망은 나 자신을 더 잘 아는 일이었다.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인가. 나는 단지 내 그림자를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 그 그림자는 등잔의 불빛을 받아 벽에 드리워져 있다. 나 자신을 그에게 알려야만 한다.

 

 

 

 

비참함과 고통만이 지배하는 이 비루한 세상에서 단 한 번 한 줄기 햇살이 내 삶에 비쳐 들어온 적이 있었다. 아니, 그것은 햇빛이 아니었다. 어슴푸레한 하나의 별똥별이었다. 그것은 여인의 형상으로, 아니면 천사의 형상으로 내 삶을 비추었다. 그 빛 속에서 나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나의 존재를 보았다. 그리고 그 별의 광채와 찬란함을. 후에 그 밝음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어둠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그 스쳐 지나가는 빛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나의 시야에서 사라진 지  두 달하고 나흘이 흘렀다. 그녀가 떠나간 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중단했다. 어리석고 성공한 체하는 자들과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술과 아편 속으로 도피했다. 내 삶은 내 방의 네 개의 벽 안에서 흘러갔으며 지금도 흘러간다. 내 모든 삶이 그 네개의 벽 안에서 흘러갔다. 나는 필통 뚜껑에 그림을 장식하는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내가 필통 장식사라는 우스꽝스러운 직업을 선택한 것은 오직 나 자신을 둔감하게 만들고, 어떻게든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내가 사는 집이 도시 외곽의 변두리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나는 이상하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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