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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함의 미학에 관하여

by winter-art 2025. 5. 28.

모든 싸움에는 비열함이 깃들어 있다. 전쟁터든, 정치판이든, 생존을 위한 경쟁의 현장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이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그 치밀함과 효과에 감탄한다. 특히 약자가 강자를 넘어뜨리는 순간에 발휘되는 비열함은 단순한 악행을 넘어 하나의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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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장에서 피어나는 비열함의 미학

전쟁의 본질은 상대의 약점을 찾아 그곳을 집중 공략하는 것이다. 정면승부로는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뒤통수를 치고, 상대가 예상치 못한 곳을 노리며, 때로는 가장 소중한 것을 인질로 삼는다. 이런 전략들을 우리는 비열하다고 부르지만, 동시에 그 기발함과 효과에 혀를 내두른다.

약자의 비열함은 특히 매혹적이다. 힘으로는 당할 수 없으니 지혜로 승부를 걸고, 정공법으로는 뚫을 수 없으니 우회로를 찾아낸다. 이는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치열한 계산이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그래서 더욱 비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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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 속에 비일비재한 비열함

성경은 놀랍게도 비열함의 보고다. 야곱이 형 에서를 속여 장자권과 축복을 가로채는 이야기,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로 물매질로 기습하는 장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사용한 심리전... 이 모든 것들이 정정당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이런 '비열한' 자들에게 축복을 내린다.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고, 다윗은 위대한 왕이 되며,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차지한다. 마치 비열함이 때로는 신성한 지혜의 다른 이름인 것처럼. 강자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아내는 것, 사람들은 이것을 용기라고 하지만 그냥 약아 빠진 수책으로 보일 뿐이다. 좋게 말하면 생존 방식인 것이고.

3. 정치판의 비열한 생존 방법

한국 정치는 비열함의 실험실이다. 정정당당함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정글에서, 오래 생존하는 자들은 모두 비열함의 달인들이다. 뒤통수치기, 배신, 변절, 음모... 이런 단어들이 한국 정치사를 장식하는 핵심 키워드들이다.

우리는 이런 모습들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생존력에 감탄한다. 수많은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는 그들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예술적이기까지 하다.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만큼은 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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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열함의 필연성

전쟁터에서는 일반 사회의 도덕률이 통하지 않는다. 살아남는 것이 최고의 선이고, 이기는 것이 유일한 정의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비열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상대를 속이고, 기습하고,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 일상이 되는 세계.

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비열함 속에서 인간의 창의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뒤바꿔놓는 묘수를 찾아낸다. 한니발의 알프스 횡단, 트로이 목마 작전, 조조의 적벽대전에서 황개의 화공... 모두가 상대의 허를 찌르는 기상천외한 전략들이었다. 물론 이런 것을 비열하다고 봐도 될런지는 모르겠으나 편애없이 객관적으로 보면 비열한 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5. 약자의 비열함 강자의 오만함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순간은 언제나 드라마틱하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반드시 비열함이 동반된다. 정면승부로는 절대 이길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런 비열함이야말로 약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자 지혜이긴 하다. 내가 사는 이 세계에서는 이런 법칙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어릴 적 톰과 제리를 보면서 약아빠진 제리가 늘 얄미웠다. 세상에 제리처럼 얄미운 캐릭터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째 세상은 그런 비열한 제리를 더 두둔했던 걸까? 고양이 톰 입장에서 쥐는 주인에게 해로운 악마였는데, 왜 그 만화는 쥐를 그렇게 미화한 걸까? 성경을 읽다 보면 항상 그런 패턴으로 움직이는 게 참으로 유감이다. 내가 이상한 건가.

톰은 그저 본능에 따라 쥐를 쫓는 건데, 제리는 온갖 함정과 속임수로 톰을 괴롭히면서도 관객들의 응원을 받는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이게 바로 성경에서 야곱 같은 인물들이 축복받는 패턴과 똑같다. 약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때로는 그들의 비열함까지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어릴 때는 누구나 제리를 보며 "너무 얄밉다"고 생각했을 텐데, 정작 세상은 그 약아빠진 쥐를 영웅으로 만들어버린다.

 

강자는 힘을 믿고 정공법을 고집한다. 그래서 오만해지고, 그래서 허점이 생긴다. 반면 약자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탐색한다. 비열하다고 욕먹을 각오까지 하면서. 그 절실함이 기적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요즘은 강자가 비열하기까지 하니 세세토록 기득권이 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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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예술로서의 비열함

결국 비열함은 생존의 예술이다. 특히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비열함은 단순한 악행을 넘어 하나의 창조적 행위가 된다. 기존의 룰을 깨뜨리고, 상대의 예상을 뒤엎으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힘. 이것이 약자들이 갈고 닦아온 유일한 무기였다.

하지만 이제 그마저도 위태롭다. 강자들이 비열함까지 학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권력과 자본에 교활함까지 더해진 이들 앞에서 약자들은 무엇으로 맞설 수 있을까. 전통적인 다윗과 골리앗의 구도는 이제 골리앗이 물매질까지 배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비열함의 미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이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생존 본능의 가장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름답지도, 숭고하지도 않지만, 그래서 더욱 진실한. 우리는 모두 생존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비열해질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비열함의 미학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교훈일지도 모른다.

전장에서 피어나는 비열함의 꽃은 추악하지만 아름답고, 비겁해 보이지만 용감하며, 부정직해 보이지만 진실하다. 다만 이제는 그 꽃밭을 강자들까지 점령해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새로운 생존의 미학을 찾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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