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4장은 신앙적인 '용서'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권력의 공백, 어설픈 타협, 그리고 뒤틀린 부자 관계가 낳은 정치적 참사로 읽어야 흥미롭습니다. 요압의 치밀한 연출과 압살롬의 광기 어린 정치가 시작되는 지점이죠.

1. 요압의 기획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의 눈치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권력의 공백을 참지 못하는 현실주의자입니다.
14:1 Now Joab the son of Zeruiah knew that the king's heart went out to Absalom. 14:2 And Joab sent to Tekoa and brought from there a wise woman and said to her, "Pretend to be a mourner and put on mourning garments..." 14:3 "...and go to the king and speak thus to him." So Joab put the words in her mouth.
요압은 다윗이 차마 체면 때문에 말은 못 하지만, 망명 간 압살롬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간파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말하면 "살인자를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드고아(Tekoa)라는 시골 마을에서 '배우'를 섭외합니다. 여기서 "Joab put the words in her mouth"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모든 대화는 요압이 써준 '대본'입니다. 요압은 다윗이라는 관객을 앉혀두고 연극을 통해 왕의 마음을 돌리려는 치밀한 연출가입니다.
2. 논리의 함정
여인은 억울한 사연이 있는 척하며 왕에게 접근합니다. 두 아들이 싸우다 하나가 죽었는데, 사람들이 남은 아들마저 죽이려 하니 막아달라는 호소입니다. 다윗이 보호를 약속하자, 여인은 가면을 벗고 본색을 드러냅니다.
14:13 And the woman said, "Why then have you planned such a thing against the people of God? For in giving this decision the king convicts himself, inasmuch as the king does not bring his banished one home again." 14:14 "We must all die; we are like water spilled on the ground, which cannot be gathered up again..."
소름 돋는 장면입니다. "We are like water spilled on the ground (우리는 땅에 쏟아진 물과 같다)"는 말은 성경에서 가장 시적인 표현 중 하나지만, 그 속뜻은 지극히 냉혹합니다.
"이미 죽은 암논은 쏟아진 물입니다. 못 주워 담습니다. 그러니 산 압살롬이라도 챙기십시오." 이것은 윤리를 배제한 철저한 실리주의(Realpolitik)입니다. 다윗은 이 논리에 설득당합니다. 정의보다 '정치적 안정'을 택한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다윗은 딸과 아들의 차별이 심했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는데, 딸이 형제에게 당했는데도 침묵하고 형 대신 복수한 차남 압살롬은 그리워 합니다. 결국 이상한 다윗의 부성애로 인해 압살롬이라는 괴물을 키워낸 것이죠.
3. 불완전한 용서
다윗은 압살롬의 귀환을 허락하지만, 묘한 뒤끝을 남깁니다.
14:24 And the king said, "Let him dwell apart in his own house; he is not to come into my presence." So Absalom lived apart in his own house and did not come into the king's presence. 14:28 So Absalom lived two full years in Jerusalem, without coming into the king's presence.
이것이 다윗의 치명적 실책입니다. 부를 거면 확실히 용서하고, 벌할 거면 계속 내쳐뒀어야 했습니다. "얼굴은 보지 않겠다(not to come into my presence)"는 조치는 압살롬에게 모욕감을 주었습니다. 예루살렘 한복판에 차기 대권 주자를 2년이나 '가택 연금' 상태로 방치한 것입니다. 이 2년 동안 압살롬의 마음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증오로, 그리고 쿠데타의 계획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4. 방화범 압살롬
압살롬은 다윗과 소통하기 위해 요압을 부르지만, 요압조차 껄끄러워하며 오지 않습니다. 여기서 압살롬의 진짜 성격, 즉 사이코패스적 기질이 폭발합니다.
14:30 Then he said to his servants, "See, Joab's field is next to mine, and he has barley there; go and set it on fire." So Absalom's servants set the field on fire. 14:31 Then Joab arose and went to Absalom at his house and said to him, "Why have your servants set my field on fire?" 14:32 Absalom answered Joab, "...If there is guilt in me, let him put me to death."
압살롬은 남의 밭에 불을 질러서라도 자기 목적을 이루는 인물입니다. 그는 요압이 달려오자 사과 대신 뻔뻔하게 요구사항을 말합니다. "If there is guilt in me, let him put me to death (내가 죄가 있으면 차라리 죽이라 하시오)." 이 말은 회개가 아니라 도발입니다. "죽일 테면 죽여보라"는 배짱이죠. 그는 자신의 외모와 백성들의 인기를 믿고 있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그를 불러 입을 맞추지만(kissed Absalom), 이미 늦었습니다. 호랑이 새끼를 키워 안방에 들인 꼴이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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