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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ter book/성경 자의적 해석

하나님의 실체는 정령 불이었나?

by winter-art 2025. 4. 11.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설명하는 다양한 은유와 상징들이 등장한다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고 일관되게 나타나는 이미지가 있다면 바로 ''이다이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신학적 주제다성경은 여러 장면과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본질이 불과 같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화신이라는 증거

 

모세와 불붙는 떨기나무: 소멸되지 않는 신비의

하나님이 불로 처음 임재하신 대표적인 장면은 출애굽기 3장에 등장하는 모세와 불붙는 떨기나무 사건이다. 출애굽기 3장 2절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타지 아니하는지라". 이 장면에서 하나님은 불로 임재하셨으나, 그 불은 떨기나무를 소멸시키지 않았다. 이 현상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준다. 하나님은 불과 같이 강력하고 임재가 분명하지만, 그 목적은 무조건적인 파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불은 소멸이 아닌 존재를 둘러싼 신비였다. 더욱 주목할 점은, 바로 이 불붙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히브리어로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라고 계시하셨다는 사실이다. 이 자기-존재적 정체성은 불처럼 독립적이고, 멈추지 않으며, 외부의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낸다.

 

 

 

광야의 불기둥: 어둠 속의 안내자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임재 방식도 불이었다. 출애굽기 13장 2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란 구절이 나온다.

광야는 위험과 불확실성, 그리고 죽음의 공간이었다. 특히 밤의 광야는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쉬운 공간이다. 그런 환경에서 하나님은 불기둥으로 임재하시어 백성들에게 빛과 온기, 그리고 방향성을 제공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불처럼 어둠 속에서 길이 되고, 혼돈 속에서 질서를 부여하며, 죽음의 그림자 가운데서 생명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내산의 타오르는 : 언약의 불꽃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가장 중요한 언약이 맺어진 시내산 사건에서도 하나님은 불로 임재하셨다.  출애굽기 19장 18절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율법이 선포되고 언약이 맺어진 이 장소에서 하나님은 불과 연기, 그리고 천둥과 번개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셨다. 이는 언약이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근본적인 속성인 불과 같은 거룩함과 정의에 기초한 관계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율법은 사람의 마음을 검증하고 정결케 하는 불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의 명백한 선언: 소멸하는

신약성경에 이르러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본질에 관해 가장 직접적인 선언을 한다. 히브리서 12장 29절은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닌,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신학적 선언이다. "소멸하는 불"이라는 표현은 일견 두렵고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분노나 파괴적 심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모든 거짓, 혼돈, 죄, 타락을 태워 없애고 진실만 남기는 정결케 하는 불의 속성을 드러낸다. 이는 금속을 제련하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금속만 남기는 제련자의 불과 같다.

 

 하나님이 불로 나타나는 이유

 

불은 물리적으로 만질 수 없고 고정된 형태가 없지만,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실체다. 가까이 가면 뜨겁고, 멀리서 보면 길을 밝히며, 완전히 들어가면 소멸된다. 이러한 불의 특성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구조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하나님은 물리적 형태로 잡히지 않지만, 그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위험할 수 있고(출 33:20, "사람이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 적당한 거리에서는 인도하는 빛이 되시며, 완전히 그분의 심판 아래 들어가면 소멸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균형을 보여주는 완벽한 은유다.

 

레위기의 제사 체계에서 불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제사 때마다 불로 태우는 제물은 죄를 불태우는 상징이자,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향기였다. 성막의 향로, 번제단, 성화(聖火) 모두 하나님의 거룩함과 정결의 불을 담고 있었다. 말라기 3:2-3에서는 하나님을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에 비유하며, 그 불이 레위 자손을 정결케 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는 하나님의 불이 단순히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정결케 하고 순수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은 본질적으로 모순적인 성격을 지닌다. 나무를 태워 소멸시키지만, 동시에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빛과 열은 생명을 유지하게 한다. 하나님도 이와 같이 이중적인 속성을 지니신다. 죄와 불의에게는 소멸의 불이지만, 의인에게는 생명과 보호의 불이 되신다. 이사야 43:2에서 하나님은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아니하리니"라고 약속하신다. 동일한 불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라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신약에서 성령은 오순절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행 2:3)으로 제자들에게 임했다. 이는 구약에서 하나님이 불로 임재하셨던 패턴의 연속이자, 새 언약의 시대에 하나님의 불이 더 이상 외부에서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예수님의 오심과 성령의 역사가 하나님의 불의 속성을 이어받아, 세상과 인간의 내면을 정결케 하는 불로 작용함을 의미한다.

 

 

불의 신학이 주는 의미

 

성경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불의 이미지는 단순한 문학적 장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신학적 메타포다. 하나님은 불과 같이 정의롭고, 거룩하며, 정결케 하고, 보호하며, 인도하는 존재다. 이러한 불의 신학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신앙적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할 때, 그분이 불과 같은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그분을 경외하되, 동시에 그 불이 우리를 정결케 하고 인도하는 은혜의 불임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불은 죄악을 태워 없애지만, 동시에 순금과 같은 믿음을 정련해내는 불이다. 그리고 그 불은 어둠 속에서 우리의 길을 밝히는 인도자이자, 추위와 두려움 속에서 우리에게 온기와 용기를 주는 임마누엘의 표현이다.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은 분명 불이시다. 그리고 그 불 앞에 선 우리의 자세가 바로 믿음의 핵심이다.

 

 

 

실제 하나님을 불로 간주한 까닭은?

 

아무래도 화산과도 연관이 있는 듯 보인다. 모든 정황들이 화산 폭발 시 나타나는 현상들과 유사하다. 지질학적 연구에 따르면, 그 지역에 약 3,000년 전까지 활동했던 화산들이 있었다. 특히 하란 화산과 같은 화산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시기와 겹친다. 그러니 광야에서의 불기둥, 구름 기둥 같은 현상도 화산 활동과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이러한 자연 현상에 대한 해석이 시간이 지나면서 신학으로 발전한 게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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