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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의 '하마에게 물리다' 간략 리뷰

by winter-art 2025. 4. 18.

오에 겐자부로의 『하마에게 물리다(The Silent Cry)』는 개인의 내면과 역사적 기억이 겹쳐지는 공간을 다룬 걸작입니다. 형제의 갈등을 중심으로, 일본 사회의 전후 혼란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파고들며, 폭력과 정체성, 사유와 침묵의 경계를 탐색합니다.


1. 작품 개요: 고향이라는 이름의 ‘시간 감옥’

『하마에게 물리다』는 1967년에 발표된 오에 겐자부로의 대표작으로, 형제인 미쓰사부로다카시가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들은 100년 전 마을에서 일어난 봉기를 되짚으며, 과거와 현재의 경계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마주하게 됩니다. 소설은 역사의 순환을 개인의 비극과 맞물려 풀어내며, 현재라는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을 묻습니다.

 

일본 시골 마을 풍경


2. 등장인물과 상징: 형제라는 거울

  • 미쓰사부로: 조용하지만 내면에 깊은 상처를 지닌 인물. 사회와의 단절, 가족의 비극, 자아 분열의 고통을 겪으며 현실에 무력합니다.
  • 다카시: 혁명적이고 과격한 인물. 과거의 역사를 현재에 되살리고자 하며, 형과는 대비되는 선택을 합니다.

이 두 인물은 현실 도피와 현실 개입, 침묵과 외침, 과거 회피와 직면이라는 이중 구도를 이루며, 독자에게 인간 존재의 다층적 면모를 보여줍니다. 오에는 이 형제 구도를 통해 자신과 일본 사회가 겪은 전후 트라우마와 정체성 위기를 입체적으로 드러냅니다.

 

두 남자의 뒷모습



3. 문체와 서사 구조: 꿈과 현실, 텍스트의 흐릿한 경계

오에의 문체는 단순한 묘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는 날카로운 사유몽환적인 분위기를 오가며, 독자를 현실과 비현실의 사이로 끌어들입니다. 특히 시간의 중첩적 구조 속에서 전개되는 서사는 하나의 사건이 과거와 현재, 심지어 꿈과 실제를 동시에 반영하며, 기억의 허위성과 감각의 불안정성을 강조합니다. 이로 인해 소설은 단선적 플롯이 아닌 의식의 흐름에 가까운 구조를 갖추며, 독자에게 지속적인 해석과 집중을 요구합니다.

 

4. 핵심 주제: 폭력과 정체성의 기원

『하마에게 물리다』의 핵심은 단지 형제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적 폭력의 반복, 그리고 그 속에서 형성된 개인의 분열된 자아에 대한 질문입니다. 오에는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 인간은 폭력을 반복하도록 운명지어진 존재인가?
  • 과거의 비극은 어떻게 현재의 우리를 만들었는가?
  • 침묵이란 무엇인가? 말보다 더 큰 진실인가?

이 질문들은 단지 문학적인 사유를 넘어서 사회적 책임과 개인의 윤리성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집니다.


5. 감상 후기: 읽는다는 것, 물린다는 것

『하마에게 물리다』는 결코 가벼운 독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고통스러운 독서를 견디고 나면,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부터 왔고, 무엇에 물려 있는지를 되묻게 됩니다. 읽는다는 것은 곧 ‘물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한 인간의 사유에 깊이 물린 채, 우리는 오래도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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