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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문명 몰락의 원인

by winter-art 2023. 3. 15.

마야 문명의 뿌리는 기원전 2000년 이전부터 저지대 메소아메리카에 살던 토착민들에게서 시작된다. 마야라는 이름을 쓴 실체가 생긴 건 서기 300여 년부터이다. 마야 문명 몰락의 원인은 분명하지 않지만 가장 유력한 설로 과도한 개발로 인해 토양 침식 등 환경 파괴가 주요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록을 중시한 마야문명의 특징

 

 

마야문명은 10, 100, 1000 등을 나타내는 별도의 기호가 있던 중국이나 로마 등과는 달리 숫자 0을 사용한 특징이 있다. 인도에서 만든 아라비아 숫자처럼 0과 자릿수를 이용하였고 유라시아 대부분의 문명과는 달리 20진법을 사용했다. 이는 마야 문명에서 발명했다기보다 이전 문명인 올멕 문명에서 이미 확립된 것으로 알려진다.

 

마야는 철저한 기록 중심 사회로 한 해의 조세 기록과 호구 조사 등을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 마야 문자는 기본적으로 표음문자이며 표의문자를 섞어서 사용했다. 또한, 진보한 역법, 발달된 천문학으로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인신공양과 마약 및 환각에 빠져 멸망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또한, 여러 문명이 결합된 종족이어서 33개의 이질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혼용하였다.

 

 

 

 몰락의 시작

 

8~9세기에 걸쳐 마야의 도시들은 연쇄적으로 몰락 조짐을 보였다. 이에 대한 명확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으나 8세기부터 나타난 소빙하기가 1차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이로 인해 일부 도시가 쇠퇴하면서 난민이 발생하고 도시간 교역도 축소되었다. 동시대 발견된 출토 유물들에서는 치명적인 영양실조의 흔적이 보였고 주요 생산품인 옥수수는 더 이상 자라지 못할 정도로 토양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결정적으로 16세기 스페인들이 도착하면서 퍼뜨린 천연두가 마야인의 숨통을 끊는 데 일조했다. 

 

 식물들의 천국 열대 우림 지역

마야 문명의 고전시대 초기에는 이례적인 습윤기였다. 이때는 농산물의 생산량이 증가하고 인구 또한 급증했다. 그러다 660~1000년 사이에 쇠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례없는 우기가 건조기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마야인들이 살던 열대 우림은 식물이 자라기에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환경이었지만 식량 생산을 하기에는 현저하게 부족한 환경이었다. 즉, 녹색 식물을 위한 재생력과 생산력이 뛰어난 것이지 식량 생산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식물은 먹을 수 없는 것도 많고 치명적인 독이 있는 것들도 많아 특히 대형동물들은 살 수 없는 환경이었다. 오로지 식물들의 천국일 뿐이었다. 게다가 토양은 석회질이 많아 내린 비는 지표에 남지 않고 쉽게 빠져나갔고 강수량은 너무 많아서 매우 척박한 라테라이트 토양만 남았다. 이러한 기후 변화의 원인은 도시와 농지의 확대로 지대를 지배해 가면서 산림벌채가 광범위하게 진행된 탓도 크다고 보고 있다. 그렇게 여러 번의 대기근에서 살아남은 마야 북부의 인구는 10% 이하로 추정된다. 

 

 인신공양으로 멸망했다는 설

 

마야인의 인신공양은 아즈텍만큼 대규모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왕은 피를 뽑아 종이에 적셔 태우며 연기를 맡았고, 여왕은 가시가 있는 줄을 혀에 꿰었다. 그 외에 귀 등의 신체 부위를 찔러서 피를 바치는 등의 의식을 했다. 이러한 의식 이외에 생명을 희생시키는 의례도 있었는데 심청이 인당수에 빠뜨리는 식으로 물에 던져 넣는 방식이었고 이는 연례 행사 수준으로 드문 일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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