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는 수컷 바다의 말 해마에 관하여
해마는 농어목 실고기과에 속하는 어류로 독특한 생김새와 번식 방식으로 인해 바다의 말이라 불린다.
1. 바다의 조용한 기적
바닷말 해마(sea horse)는 독특한 생김새의 물고기로 보인다. 머리는 말처럼 길쭉하고 몸통은 비늘대신 골편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꼬리는 나뭇가지처럼 감기는 특색을 지녔다. 이 작고 느린 해양 생물은 바다 생태계 안에서 놀라운 비밀을 품고 있다. 해마는 임신하는 수컷이기 때문이다.
2. 수컷이 품는 생명 반전
보통 상식적으로 암컷이 알을 낳고 새끼를 낳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해마는 역할이 완전히 바뀐다. 해마의 암컷은 교미 시 수컷의 배에 위치한 육아낭(brood pouch)에 알을 집어넣는다. 이후 수컷이 수정 과정을 완성하고 2~3주간 알을 품는다. 그리고 출산 시에는 복부를 수축하여 수백 마리의 새끼를 내보내는데 그 모습은 마치 인간의 분만처럼 격렬하다고 한다.
해마의 이러한 생식 방식은 모성과 부성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생물학적으로는 수컷이지만 사회적 의미로는 암컷에 가까운 존재이다. 학자들은 이 점을 두고 자연이 성역할을 뒤집어 평등을 실험한 예라고 한다.
해마는 유영 능력이 거의 없다. 다른 어류처럼 꼬리지느러미가 아닌 등지느러미 하나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대신 해마의 느린 몸은 완벽한 위장술로 보완된다. 해마는 산호나 해초에 꼬리를 감고 몸색을 주변과 맞추며 천천히 흔들리며 바닷속 조류에 섞여 들어간다. 그 덕분에 포식자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해마의 느림은 약점이 아니라 존재를 감추는 생존 전략이다.
3. 해마의 쓰임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는 해마를 강장제나 불로초의 재료로 쓰여 약재로 쓰이곤 했다. 말린 해마는 성기능 강화나 장수의 부적으로 거래되며, 전 세계적으로 연간 수천만 마리가 포획된다. 그 독특한 형태 때문에 수족관 장식용이나 기념품으로도 팔린다. 그래서인지 국제자연보전연맹에선 해마를 위기 근접종으로 지정했다.
4. 미디어 속 해마의 상징 그밖에
영화 등에서 해마는 뒤집힌 생식과 존재의 경계를 대변하기도 한다. 해마의 수컷 임신을 두고 남성과 여성 그리고 인간과 신성을 동시에 가진 존재의 은유로 본다. 2004년 웨스 앤더슨 영화 중에는 재규어 상어 외에도 수많은 해양 기형 생물이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해마는 통제되지 않는 자연과 기억의 상징으로 읽힌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 속 세트 설정에는 해마를 관찰당하지 않는 세계의 잔여로 존재한다.
해마(hippocampus)는 뇌의 기억 중추 명칭이기도 하다. 라틴어로 바다말이란 뜻인데 해마는 기억, 꿈, 무의식의 저장소로 쓰인다. 시각적으로는 기억의 바다 속을 유영하는 생명의 은유로 등장한다. 영화 스네이크 아이처럼 무엇을 보았는가가 어떻게 기억되는가가 주제인 영화에서 자주 활용되는 상징체 이기도 하다.
미술 작품이나 문학 속에도 해마의 상징은 인상적이다. 초현실주의 회화 작가 살바도르 달리의 1930년대 습작품 the seahorse는 시간과 기억의 뒤틀림, 남성적 불안을 다루며 해마를 기억의 기표로 활용하였다.
보르헤스의 기억의 형상이란 작품에는 뇌의 해마와 바다말의 언어 유희를 활용하여 기억의 바다를 은유적으로 사용하였다. 마가렛 애트우드의 시 seahorse에서는 모성과 부성의 역전, 존재의 경계를 다루며 남성 자궁의 모티브를 얻었다.
결론적으로 해마는 기억을 품은 생명체 그리고 성 역할의 전복이라는 두 축에서 예술가들에게 반복적으로 소환되어 왔다.